과학이 내 삶에 훅 들어올 때
과학이 내 삶에 훅 들어올 때
  •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전시체험 부장
  • 승인 2020.11.25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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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전시체험 부장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전시체험 부장

 

교사로서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로부터 종종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공부하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하고, 지겹고 따분한 공부만을 해온 사람만이 갖는 그 특유의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말한다.

“이렇게 어려운 물리를 꼭 배워야 해요? 이거 배우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학생들에게 하고자 하는 의욕을 심어주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종종 내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간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이 질문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실용주의와 본질주의, 이황과 이이의 이기론까지 넘나들 수 있는 심오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배웠던 과학적인 요소가 어느 날 우연히 내 삶에 훅 들어올 때 느끼는 체험이야말로 학생들이 했던 질문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가 바라는 가장 근접한 답이 아닐까? 그러면 더 이상 따분한 눈으로, 공부에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없는 눈으로 질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초보 교사 시절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중학교 2학년 담임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속초 인근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의 일이다. 멀미가 심해서 초등학생 때는 기차에서도 멀미를 했던 초보 교사라서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담임교사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것이 부담이었다. 그 당시는 버스를 타기 2~3시간 전에 붙이면 멀미를 방지한다는 귀밑에 붙이는 태그가 유명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강력(?)하다고 소문난 태그를 귀밑에 붙였다. 세수하고 치장하면서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오른쪽 눈의 명암 밝기와 왼쪽 눈의 명암 밝기가 달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오른쪽 눈으로 보는 세상은 마치 TV의 밝기를 최대로 해놓아서 빛바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당황해서 거울로 오른쪽 눈을 살펴보니, 눈동자 주변을 감싸고 있는 흑갈색 홍채가 거의 없어지고 평상시에는 홍채에 가려져서 작게 보이는 검은 눈동자가 거울 속에서 커다랗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스치는 무논리적인 생각 `죽을 병에 걸렸나?'

평상시와 다른 점은 귀밑에 태그를 붙인 것임을 떠올린다. `아! 세수를 먼저 하고 귀밑에 태그를 붙여야 했는데, 너무 긴장해서 미리 붙이는 바람에 약품이 물을 통해 눈에 들어왔구나!'하고 추론한다. 흑갈색 홍채가 하는 일을 생각한다. `밝기 조절이었지. 홍채가 사라졌으니 검은 눈동자가 더 크게 보이는 거고 내 눈에 보이는 세상도 빛이 바래어 있는 거구나!'배움이 없이 이 추론이 가능했을까?

그 해 수학여행에는 피터팬에 나오는 애꾸눈 선장 후크같이 안대를 한 여교사 한 명이 학생들을 따라다녔다. 빛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눈동자 크기를 조절하는 홍채가 없으니 이를 대신할 안대를 낀 것이다. 당일 일정이 거의 마무리되어 갈 때 속초지역 안과를 방문했다. 홍채를 다시 살리는 안약을 처방받는 과정에서 필자가 과학 교사인지를 모르는 의사가 말한다. “눈동자로 빛이 많이 들어가면 눈을 다칠 수 있었는데 안대를 하신 건 잘하신 거에요.”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우리 삶이 수많은 과학적 현상과 함께한다는 것을 잘 모른다. 내 주변의 소소한 일들이 모두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들로 넘쳐난다. 이 재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뭔가 하나 놓치는 건지도 모른다. 내 삶에 과학이 훅 들어온 순간도 그동안 모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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