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歸天)에 관하여
귀천(歸天)에 관하여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0.11.1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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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중간생략)…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故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입니다.

필자는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부정적이지도 않으면서 가장 담담하고 순수하게 표현한 이 시를 좋아합니다.

시인은 죽음을 이 세상 소풍을 아름답게 끝내는 날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흔히 쓰는 조문(弔文)이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말이지만, 필자는 이 시의 표현을 빌려 “편안한 귀천을 빕니다”라는 식으로 쓰곤 합니다.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든 지인의 죽음에 대한 장례와 조문은 일상생활입니다.

그 제 오랜 친구의 비보(悲報)를 듣고 장례식장을 갔다 오면서 사람의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불혹을 훌쩍 넘기면서 주위 친구들의 부모님 喪이 자꾸 생기는 걸 보니 부모님한테 더 잘해야 하는데…….', `사람의 수명은 계속 연장되는데도 불의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인가', `할 일은 많은데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인가' 등의 자조 섞인 생각들이 가득 채워집니다.

필자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형법을 강의하면서 살인죄 부분에서 사람의 법적인 시작과 끝을 설명합니다.

태아 단계를 넘어 사람의 시작에 관하여, 우리 생활관계를 전반적으로 규율하는 민법에서는 세상으로 신체가 모두 나왔을 때인 전부노출설을 따르지만 형법에서는 가진통 단계를 넘어 출산 전의 출산진통 단계에 사람이 시작된다는 진통설을 따릅니다.

사람의 끝에 관하여는, 호흡을 기준으로 하는 호흡종지설도 있지만 심장이 영구히 정지되는 경우의 맥박종지설을 따릅니다.

최근의 흐름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시행으로 뇌사설이 유력해지고 있지만 이는 장기이식 행위의 위법성을 탈락시키는 법률로 보는 것이 정확하고 사망은 여전히 심장의 종지 여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론입니다.

이렇게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사람의 죽음을 말하지만, 정작 주관적으로 나의 가족과 나를 온전히 알고 있는 지음(知音)의 죽음에 대하여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자신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필자의 의지이든 타인의 요청이든 처리해야 하는 일은 계속 늘어나고 활동범위는 점점 넓어지니 그러한 분주한 일상 속에서 어느 그에게는 가장 슬픈 일을 형식적으로 대한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언젠가 나의 죽음을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대하거나 그냥 지나가는 일로 생각한다면 이 세상의 소풍은 그다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인이 된 친구의 편안한 귀천을 빕니다.

그리고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서처럼 우물 속 한 사나이를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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