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다는 것
길들여진다는 것
  • 박사윤 한국어강사
  • 승인 2020.11.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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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사윤 한국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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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나들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스산해진다. 가을이 진다. 남은 막바지 늦가을을 즐겨보련다. 매년 찾아오는 가을인데도 놓치고 싶지 않다. 작년에 느꼈던 그 감정은 새카맣게 잊고 처음 맞이하는 것처럼 늘 새롭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낯선 곳의 설렘을 느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의외로 익숙함에 길들여져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한다.

`어린왕자'에 이런 말이 나온다.

“네가 나를 길들이면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너에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길들여진다는 것은 언뜻 보면 아주 좋은 뜻인 냥 착각하게 한다. 좋은 행동이나 좋은 습관에 길들여진다는 건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건 아주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가끔 범죄 사건에서 나타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 있다. 이는 자신보다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공감하거나 연민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유괴나 납치 상황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지칭하지만,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등의 대인관계 상황에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용어는 주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간헐적으로 괴롭히고, 때리고, 위협하고, 학대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 간에 강한 정서적 유대가 형성되는 경우에 폭넓게 쓰인다.

가정 폭력을 당하는 가정의 경우, 주기적으로 남편의 폭행이 반복되다 보면 도리어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정한 기간이 지났음에도 맞지 않으면 도리어 불안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차라리 맞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래야 당분간은 편하다는 논리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폭력은 아니지만,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계속 자신의 잘못으로 몰아간다면 나중에는 진짜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고 결국엔 자신이 잘못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요즘 애견인구가 천만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털 달린 짐승은 무조건 싫다던 나 역시도 애완견을 키운 지 4년이 넘었다. 우연치 않게 지인으로부터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 키우다가 정이 들어 계속 키우게 되었다.

두 달도 안 된 어린 새끼를 데려와서 우유를 먹이면서 키우다 보니 어느새 가족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대소변 교육 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나하나 길들이면서 이젠 함께 살아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길들여졌다. 이젠 잘 길들여졌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씩 엉뚱한 행동을 한다. 내가 바빠서 신경을 못 쓰거나 늦어지는 날이 계속되면 애완견이 대변 패드에 볼일을 보지 않고 아무 데나 똥오줌을 싼다. 그러고 나서 혼이 날까 봐 숨어 있다. 본인도 잘못한 행동인 줄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관심을 갖게 하려는 이러한 행동을 볼 때 전혀 길들여지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아이도 역시 엄마가 원하는 대로 길들여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알게 된다. 길들여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익숙해지는 것을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로 살고 싶었던 나도 어느덧 세월에 길들여진 순한 양이 되어 버렸다.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 이것이 인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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