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문 상처는 아름답다
잘 아문 상처는 아름답다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 승인 2020.11.1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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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매년 겨울맞이 행사는 몇 날 며칠로 이어진다. 몇 개 안 되던 녀석들은 식구를 늘렸다. 이른 봄부터 영역싸움을 하다 서로 합의해 자리를 잡으면서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나눔을 해도 개체수가 늘어나는 속도를 감당하기 어렵다.

체구도 커져 차지하는 공간이 더 필요한데, 숫자까지 늘어나니 실내와 보일러실도 모자라 이젠 자투리공간에 비닐하우스까지 만든다. 하루는 땅을 고르고, 하루는 비닐하우스를 치고, 화분을 옮긴다. 각기 자라는 환경이 다르니 양지에서 음지까지 빛의 양을 따져 위치를 정한다. 물주는 횟수도 다르니 화분 받침도 화분에 따라 다르게 연을 이어준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움직여서 기본적인 배치가 끝났다.

이제부터는 가지와 순 정리에 들어간다. 야외에서 신나게 세력 키우던 녀석들에게 어쩔 수 없이 손을 댄다. 늦은 작업이지만 제라늄 종류는 맨손으로 순을 먼저 질러 준다. 그리고 생장점도 잘라 준다. 키가 커지는 것을 방지하고 소복하게 모양을 잡아주는 작업이다.

올리브와 유칼립투스도 곁가지가 많이 자랐다. 전정가위로 도장지를 잘라 정리한다. 말끔해졌다. 로즈마리와 라벤더는 나무가 되었다. 화분을 드는 순간 몸집을 가눌 수 없는지 휘청휘청 댄다. 윌마는 다소곳하게 자라 손을 볼 필요가 없다. 가지 친 것을 삽목한 건데 1년 동안 폭풍성장을 했다. 이 녀석들은 손을 댈 때마다 향을 진하게 전한다. 손끝에 정유향이 오래오래 남는다.

올해 처음으로 꽃핀 플루메리아는 키가 너무 자라 집안으로 들어가기 버거운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2개의 가지는 자연스럽게 부러진 상황이라 간신히 집안에 안착을 시켰다. 무게와 바람을 못 이겨 상처가 남긴 했지만 꽃을 피워줘 대견스럽다.

가장 많이 개체수를 늘인 것은 선인장 종류와 알로카시아. 용신목, 청화각, 홍화각 등 생장점을 수직으로 두고 키우는 몸에 자구를 많이도 달았다. 소정 같은 둥근 형태의 녀석들은 머리 위로 원을 그리며 자구를 둘렀다. 손바닥같이 생긴 백도선 종류는 끄트머리를 이어가며 달아 몸집을 키웠다. 작은 녀석들을 하나하나 잘라내고 떼어내서 흙에 꽂을 준비를 한다. 흰 우윳빛의 액이 눈물이 되어 뚝뚝 흐르더니 이내 상처는 아문다. 며칠 지나 상처가 아문 상태를 확인하고 흙에 꽂는다.

알로카시아는 무름병에 걸린 녀석들이 개체수를 늘렸다. 곧게 서서 자라는 녀석들이 무름병에 걸리면 치유가 어렵다. 하여 커다란 잎을 잘라내고 눕혀 땅에 묻는다. 부드러운 흙으로 덮어 주면 잊을 만한 시기에 건강한 순을 올리고 잎을 펼치며 기지개를 켠다. 진녹색의 건강한 녀석들이 모체의 양분으로 뿌리를 내렸다. 하나하나 거두어 화분에 옮긴다. 하나의 모체에서 12개의 자식이 생겼다. 겨울을 나면 건강한 모체로 자라날 녀석들이다.

개체수를 늘리는 것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선인장은 끊임없이 우윳빛의 눈물을 흘리고, 잘린 가지 끝은 균에 노출되어 썩을 수도 있다. 늘 조심스레 작업에 임하지만, 손을 댈 때마다 주저한다. 그래서 작은 가지 하나 손톱만 한 자구 하나 허투루 버리지 못하고 흙에 꽂는다. 모체의 상처는 잘 아물고 모양새는 더 풍성하면서도 건강하게 만들어진다. 자구도 뿌리를 내리고 모체를 닮아 잘 자란다.

불통(?)의 겨울이다. 햇빛과 물을 조절할 수 있으나 조그마한 공간에 그것도 실내가 되면, 아무리 환기를 잘한 다해도 여름만 못하다. 다년간 식물의 습성을 파악해서 관리한다 해도 빛, 물, 환기에서 환기가 안 되면 성장에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왜 하필 여름이 아닌 겨울에 이런 작업을 하냐?”고 묻는다. “겨울은 아픈 상처가 시간이 걸려도, 잘 아물 수 있으니까”라고 답한다. 잘 아문 상처는 멋진 결을 갖고, 아름다운 수형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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