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속의 달
우물 속의 달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11.09 2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달은 하늘에 떠 있어야만 할까? 이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밤하늘에 뜬 달은 맑은 물을 거울삼아 얼굴을 비춰 보곤 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보고 달이 물속에 떠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이다. 고려(高麗)의 시인 이규보(李奎報)는 이런 너스레의 결정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물 속의 달(山夕詠井中月)

漣漪碧井碧嵓隈(연의벽정벽암외) 잔물결 이는 푸른 암벽 모퉁이 파란 우물속에
新月娟娟正印來(신월연연정인래) 새달이 어여쁘게 바로 비추네
汲去甁中猶半影(급거병중유반영) 물을 길어 가면 물병 속에 반쪽이 담길 테니
恐將金鏡半分廻(공장금경반분회) 금빛 거울을 반으로 나누어 놓고 돌아갈까 두렵네

푸른 암벽 모퉁이에 우물을 파 놓은 걸로 보아 시인이 머무는 곳은 암자일 듯하다. 파란 우물이라고 한 것은 우물물이 가을 하늘처럼 파랗고 맑기 때문일 것이다. 우물은 동그랗고, 그 안의 물은 맑디 맑으니 거울이나 진배없으리라. 이 우물물에 이제 갓 떠오른 달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본다.

마치 새색시가 경대에 앉아 거울을 보며 얼굴을 단장하듯이. 새색시 달이 얼굴을 비춰 보고 있는 그때 마침 우물물을 길러 오는 스님의 모습이 시인의 눈에 들어온다. 물병 속에 달이 떠 있는 물을 길어 담으면 물과 함께 달도 반쪽이 떼어져 담기리라. 그래서 물 긴 스님이 돌아가고 나면, 달빛에 금색이 된 둥그런 우물 거울이 반쪽만 남아 있지나 않을는지 시인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강이든 호수든 우물이든 물이 맑으면 달이 물 아래로 보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사람들은 물에 떠 있는 달에서 운치를 느끼곤 한다. 고요한 밤에 호젓한 곳에서 만난 물속에 밝은 달이 떠 있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황홀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