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전쟁,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싸움
세기의 전쟁,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싸움
  •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전시체험부장
  • 승인 2020.11.04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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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전시체험부장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전시체험부장

 

과학자들은 어떻게 싸울까? 과학사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논쟁들이 많다.

오늘 소개하는 논쟁은 철학을 바탕으로 물리학의 큰 획을 가르는 싸움으로 관련 배경지식 없이 이해하기는 어렵다. 내용이 어려워 그동안 몇 번이나 기고하려다 멈추기를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세기의 전쟁이라고 부를만한 주요 논쟁이므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상자 속에 구슬이 들어 있다. 상자를 둘로 나누어 구슬이 어느 쪽에 있는지 생각해보자. 나누어진 상자 A와 상자 B 어느 쪽에 있을까? 이것은 상자를 열어보는 순간 결정된다. 열어보기 전에는 어느 쪽에서도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상자 A는 지구에 놓아두고, 상자 B를 들고 몇백만 광년 멀리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에 가져다 놓았다고 하자. 지구에 있는 사람이 상자 A를 열어보니 구슬이 들어 있다면, 안드로메다은하에 있는 상자 B에는 구슬이 없다는 사실이 바로 결정된다. 이것이 보어(Bohr)의 양자론(量子論) 핵심이다.

아인슈타인(Einstein)은 물리적으로 정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저렇게 확률적으로 답하는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Einstein, Podo

lsky, Rosen, Physical Review 47호·1935).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사람이 상자를 열어보는 행위에 따라 존재하고 있는 물리적인 실재가 어떻게 영향을 받느냐고 비판하였다. 게다가 지구에 있는 상자 A의 상태가 몇백만 광년이나 떨어진 상자 B의 상태를 즉각 결정하도록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물체의 이동이나 신호를 전달한다고 해도 빛보다 빠를 수는 없는데 즉각 정보가 전달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보어가 이에 대해 반박하면서부터(Physical Review 48호), 이후로 50년간 티격태격 저널을 통한 세기의 논쟁이 벌어졌다. 수많은 과학자가 너도나도 편이 나뉘어 격렬한 논쟁에 뛰어들었다. 이를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의 첫 머리글자를 따서 EPR 논쟁이라고 부른다. 수십 년이 흐르며 미궁에 빠진 이 난제는 아인슈타인이 죽은 후 1964년에 이르러셔야 비로소 검증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1964년 존 벨은 획기적인 수학적 방법(오늘날 벨의 부등식으로 불린다)을 제시하였는데, 국소적인 실재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가정이 맞다면 벨의 부등식은 실험결과를 만족시키게 되지만, 보어가 옳다면 이 부등식이 깨어지게 되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그 결과를 확인하려는 실험이 행해졌다. 1982년 알랭 아스페 팀이 독창적인 실험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내었는데, 누가 이겼을까?

놀랍게도 아인슈타인이 패배하였다. 수십 년에 걸쳐 논쟁했던 싸움의 결과는 오히려 양자역학의 타당성을 강화시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즉, 상자 `A와 상자 B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면, 어떤 한 상자가 받는 영향은 공간을 초월하여 즉각 다른 상자에 전달된다.'라는 사실, 깊이 있는 물리학적 지식이 포함된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싸움(EPR 논쟁)을 너무 거칠게 단순화하였다. 그러나 자연은 마치 양파와 같아서 까면 깔수록 여전히 모호한 면이 있음은 잘 전달되었으리라 믿는다.

이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만큼이나 독특한 양자역학의 탄생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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