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가을의 기도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11.0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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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넓은 삼정들이 훤하다. 겨울의 서슬을 직감한 가을이 보내는 들판의 팬터마임이다. 다 내어주고 텅 빈 논이 되어간다. 알곡은 사람에게, 몸체는 동물에게 건네고 빈손이다. 자기가 갖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자연으로 귀의한다. 다음해의 윤회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내 눈에는 순교자가 따로 없다.

봄에 모가 심겨지기 시작하면서 여름의 장마를 견디는 벼를 지켜보았다. 벼는 꽃을 피우고 열매가 열리기까지 들사람들의 발걸음을 들으며 큰다. 그들의 게으름은 잡초가 낱낱이 보여준다. 벼보다 키가 더 잘 커서 대번에 표시가 난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들바라지는 진즉 자취를 감추었다. 식당에서 배달을 시키거나 직접 가서 먹는다. 기계가 대신 빼앗아간 풍경이다.

아마도 농촌의 인심이 이 풍경이 사라지면서부터 삭막해지지 않았나 싶다. 일꾼이 아니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다 함께 나누던 밥. 어느 집 타작하는 날은 동네 잔칫날이다. 일을 쉽게 빨리하는 기계가 장악하면서 사람들이 편해진 대신 이웃과의 정이 메말라갔다.

이런 빈들을 바라보노라면 들밥을 머리에 이고 가는 아낙이 보인다. 막걸리를 채운 주전자를 들고 그 뒤를 쫄래쫄래 따르는 여자아이가 있다. 어린 아이에겐 논둑길이 곡예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술이 엎질러져 낭패다. 조심하느라 가도 가득하던 주전자가 반만 남아있다. 그때는 아버지의 핀잔에 주눅이 든다. 아버지는 유년시절부터 아프기 전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다. 늘 취해있는 모습이다. 술은 무능력한 지아비를 만들고 자식들에게 원망스런 아버지가 되었다. 그런 게 싫어서 아직도 술을 조금도 먹지 않는다. 아니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세상을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도 나는 엄마가 답답했다. 엄마는 평생 일도 많이 안하고 술만 드신 지아비를 불평하거나 미워하지 않으셨다. 커서 물어보자 군대 간 셈 친다고 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생각이다. 사남매를 키우느라 고생스러웠을 텐데 한번 인연 맺은 지아비를 신앙처럼 생각하고 산 사람. 바로 엄마가 순교자다.

이렇게 휑해져 스산해진 들 앞에 서니 술에 절어 계시던 아버지가 아니라 주머니에서 마끼빵을 슬며시 꺼내주던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세 오빠가 눈치 챌세라 몰래 건네준 건 나와 아버지와의 비밀이었다. 입이 짧아 잘 먹지 않는 딸이 측은했던가 보다. 엄마는 밥 한 숟가락 먹을래 아니면 한 대 맞을래하며 매를 들고 밥을 먹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꽤나 엄마 속을 썩인 모양이다.

상강(霜降)이 지난 10월의 들은 나에게 비우라고 한다. 좁아보이던 들이 텅 비어 얼마나 넓은 들이 되었는가 묻는다. 내안에 빈틈없이 채워진 남의 생각과 말들이 독소로 가득한지 보라고 한다. 독(毒)이 온 몸에 퍼져 불면과 체기로 시달리는 나를 바라보라고 조언을 던진다. 저 들은 나에게 비우라, 비우라고 채근한다.

먼저 미움부터 버려라. 그래야 그 자리에 용서가 온다. 비워내야 평온이 찾아올지니 그제야 편해질 수 있다고. 용서는 세상 가장 깊은 기도라고. 가을이 나를 향해 손나팔을 하고 요량히 기도문을 외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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