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사랑 한다'를 읽으며
`꽃을 사랑 한다'를 읽으며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0.10.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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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앞산에 순백으로 피어 있던 구절초가 꽃잎을 접었다. 복자기 나무도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지 곱게 옷을 갈아입었다. 하루하루 집 주변의 꽃과 나무들의 변화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봄과 여름내 함께 지냈던 저것들 다 떠나보내고 저들이 남겨놓은 허한 가지들만 붙들고 다른 계절로 가야 한다. 꼬리만 남은 가을을 잡고 오늘도 마당에서 서성거린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받은 현진스님의 “꽃을 사랑 한다”산문집을 읽었다. 미뤄놨다가 여유가 생겨 책을 들었다. 읽어 보기 전에 스님이 쓰신 책이라면 어려운 불교 가르침이나 조금은 고리타분한, 그쯤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땅콩을 먹다 보면 그 고소한 맛에 하나만 먹고 손을 놓을 수 없듯이 이 책을 도중에 놓을 수가 없었다. 좋은 문장에 줄을 그으면서 다시 읽고 있다.

꽃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건 때를 달리하여 피기 때문이다. 인생이 신비로운 것도 사람마다 지닌 개성과 재주의 쓰임새가 다른 까닭이다. 누구에게나 절정의 때는 따로 있다. <매순간이 절정이다> 중에서.

“인생의 길목마다 중요한 일이 있고 중요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 시절에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돌아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과거의 일이나 옛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보다는 지금 곁에 있는 일과 사람을 더 챙겨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내가 하는 일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내 삶의 속살이다.”<겨울날 비 내리는 추억 속에>중에서.

글의 제목이 <꽃은 핀다 사람이 보더라도 보지 않더라도> <같이 밥 먹을 친구 하나 있는가.> 라든지 <어제는 틀리고 오늘은 맞다.> 한 문장의 글로 울림이 된다.

현진스님은 마야사에 꽃을 심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를 주고 싶다고 하셨다. 손목이 아프도록 풀과 씨름하고 꽃나무 하나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셨다는 내용을 읽으며 무릎을 쳤다. `스님도 그러셨군요.', `저도 그랬어요.', `사람들 하고 노는 것보다 꽃들과 이야기하는 게 마음 편하시죠.', `저도 그래요.'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면서 스님이 옆에 계신 듯 이야기를 했다.

스님이 그러셨듯이 나도 올해 처음 꽃무릇이 꽃을 한 송이 피워 냈을 때 연신 감탄사가 나왔다. 방에 있는 남편을 불러내고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보냈다.

남들은 그깟 꽃 한 송이 핀 것이 무슨 대수라고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땅속에서 얼마나 힘겹게 버텨 왔는지 알기 때문이다.

심은 그해에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여름엔 잎이 지고 나면 꽃 무릇의 존재를 잊게 된다. 심겨져 있는 것을 잊고 풀을 뽑다 보면 꽃무릇 구근이 나온다.

다시 심어놓지만 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내가 호미를 휘두를 때 땅속에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는가.

꽃을 심고 가꾸는 사람들은 식물들 나름대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을 안다.

구절초는 이제 졌다. 구절초가 올가을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나를 즐겁게 해줬으니 고맙다. `꽃을 사랑 한다'를 읽는 순간 꽃밭에 앉아있는 것처럼 행복했다. 그래 사는 게 별거냐, 꽃이나 사람이나 자기 몫의 향기를 품고 살면 잘 사는 거지. 이렇게 따스한 글을 읽고 나면 오랫동안 맑은 여운이 남는다. 마당 끝에서 노란 국화꽃이 `나 여기 있어요.'하며 향기를 보낸다. `어디선가 은은한 꽃향기가 난다 했더니 너였구나.'국화꽃 위로 가을의 오후 햇살이 쏟아진다. 국화꽃 옆에서 나도 따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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