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들
어머니와 아들
  • 최운숙 수필가
  • 승인 2020.10.2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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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운숙 수필가
최운숙 수필가

 

병원에 계신 어머님이 순댓국밥을 먹고 싶다고 하신다. 마침, 무얼 해 드릴까 고민하던 차에 `잘됐다'하며 병원 근처 육거리시장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순댓국밥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

“며느리보다 잘 드시네, 며느리는 반밖에 안 먹었는데 어머니가 더 잘 드시네?

우리 어머니 금방 다 낳으시겠다!”

아들의 한마디에 어머님 얼굴이 방긋, 달덩이가 되었다.

두 달 전 병원에 들어가실 때는 보조기구에 의존해 걸었는데 이제 제법 잘 걸으신다. 오늘은 병원을 여섯 번이나 돌았다며 좋아하신다. 주차해 놓은 차가 멀리 있어 가져오겠다는 말에 극구 걸어가신다고 한다. 걸음마 시작하는 아이처럼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디딘다. 내 걸음도 어머니 걸음에 맞춰 아이가 된다. 지나는 사람들이 어머니와 나를 번갈아 본다. 마치 어디가 닮았나 찾기라도 하듯이.

어머니 걸음이 점점 느려지자 남편에게 업으라고 했더니 당황한다. 빨리 업으라는 재촉에 그가 등을 내밀자 손사래를 치신다. 80킬로라 무거워서 못 업을 거란다. 당신 말씀대로 어머니를 업는 순간 그는 주저앉고 말았다. 지게를 처음 져본 지게꾼처럼 기우뚱 주저앉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어머니를 업어본 적이 없어 균형을 잡지 못하기도 하지만, 어머니를 염려하여 무리하게 시도하지 못하는 마음도 보였다. 다시 한 번 해보자는 말에 그가 용기를 낸다. 육십인 아들이 구십의 어머니를 업었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생각보다 가볍다는 걸 느꼈을까. 그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렇게 그는 어머니가 걸어온 것처럼 어머니를 업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막내아들과 이십 년을 넘게 살았던 어머니는 언제나 당당했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셨다. 그런 까닭인지 남들보다 건강하셨고 나이 칠십에도 산을 다녔다. 그러나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는지 건강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이제 어머니는 보호자 없이는 생활이 어렵다. 할 말은 하는 매운 성격이라 병원 도우미 선생님들의 눈에 미운 오리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들에게 책임을 다하도록 보이지 않는 눈이 되기도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처음 세상에 왔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왔던 그 길이 가까울수록, 작디작았던 체중처럼, 하나씩 비워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도 그렇게 비워내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들을 업어왔던 것처럼, 아들은 앞으로 몇 번을 더 업어줄지 모르지만, 남편은 그날의 기억을 오래도록 가져갈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우리의 생활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병문안을 하러 가기도 어렵고, 병원 외출도 어렵다. 면회가 어려운 상황에서 유리창을 두고 어머니와 면회를 한다. 어머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서로는 아주 가깝다.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창문 하나의 두께만큼 마음은 더 가까워졌다. 매일 매일 노크하는 문자가 그렇고,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더 사랑하는 기질을 가졌다. 그 기질은 내일은 더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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