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쁜 그녀
참 예쁜 그녀
  • 이명순 수필가
  • 승인 2020.10.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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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수필가
이명순 수필가

 

몇 년 전에 한국어를 배우던 완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데 잘 지냈느냐는 물음에 `저는 잘 지내지 못해요.'라고 대답한다. 이유인즉 얼마 전에 손을 다쳐서 청주 병원에 입원 중이란다. 어쩌다가 다치게 됐는지 물어보니 다니던 직장에서 기계에 손가락 한 개가 절단됐는데 수술을 하고 한 달 넘게 입원 중이라고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병문안도 갈 수 없으니 잘 지내고 건강해져서 집에 오라고 말하는데 안타까웠다.

완 씨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동글동글 귀여운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체구는 작았지만, 배포는 컸고 부지런하며 싹싹한 성격이었다. 식당을 하시는 시어머니를 도와 식당에서 일했는데 총기가 있어 손님들에게 한 번 들은 말을 기억했다가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하고 나름대로 문장 활용 표현도 잘했다.

결혼 후 첫 임신을 했었지만 조기 유산 한 후 아기를 빨리 갖고 싶어 했었다. 노심초사하다가 다시 임신을 했고 힘든 입덧 과정을 거치며 과거의 아픔을 되풀이할까 봐 걱정도 많이 했었다. 그렇게 첫 아들을 출산했는데 모성애도 강했다. 이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인데도 엄마로서 아기에게 헌신할 줄 알았고 아기가 삶의 전부인 듯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아기가 원하는 것은 뭐든 해줄 거라며 나중에 아기가 친구들에게 맞으면 자신이 가서 때려 줄 거라는 엉뚱한 말에 웃기도 했었다. 그렇게 아기를 키우며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했고 시간이 없어 센터에 운전면허를 배우러 못 가니 혼자 인터넷을 보며 악착같이 공부해 한 번에 합격했다며 스스로 뿌듯하게 말했었다. 공부하러 방문하면 사소한 일상도 조잘조잘 참새처럼 이야기하기를 좋아했고 한국말도 빨리 배웠다. 남편과의 관계도 좋았고 부부간의 의사소통도 문제없었다.

그러다가 시어머니가 식당을 접게 되자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직장을 구했다. 집안일만 하다가 회사에 다니게 되니 재밌다고 하며 월급을 받으면 저금을 해서 나중에 무엇 무엇을 하겠노라며 자신의 계획을 말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였을까. 마냥 행복했던 그녀에게 다시 아픔이 찾아온 것이다. 몇 번의 이식 수술을 반복하며 장기간 입원해 있는데 아들에게 제일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인 자신이 어린 아들을 돌봐 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두 달여의 시간이 지나고 퇴원했지만, 올해는 지속되는 악재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 방문을 못하고 중간 중간 전화 통화로만 안부를 물어야 했다. 추석이 지나고 얼마 전 다시 연락이 왔는데 며칠 후 또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이며 마스크도 꼭 착용하고 안전수칙 잘 지키며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했더니 그녀가 하는 말 `선생님도 똑같이 하세요'라고 한다. 꾸밈없는 그녀의 말에 순간 웃음이 번졌다.

젊은 엄마로서 의젓한 모습을 보여도 내 눈에는 늦둥이 막내딸 같다. 살이 쪄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병원 생활로 살이 쏙 빠졌단다. 매콤하고 칼칼한 음식을 좋아하던 그녀에게 밍밍한 병원식은 입에 맞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이번이 마지막 병원행이길 바라며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조잘조잘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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