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집과 도시재생
고향 집과 도시재생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20.10.1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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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원치 않게 집안 어른이 되어 버렸다. 상의하고 의지할 어른이 없다는 것은 커다란 상실이다. 결정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삶은 행복하다.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자리는 그것이 어떤 자리이든 고독하고 외롭다. 자신의 결정으로 많은 사람의 삶이 영향받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한참 동안 청주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다가 지금은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고쳐 고향에서 살고 있다. 명절 때면 형제들과 조카들이 집에 온다. 재미있는 것은 집에 오는 동생과 조카들 말의 변화다. 청주 아파트에서 살 때는 `형'집 혹은 `큰아버지'집에 온다고 하더니 지금은 `고향 집'`할아버지 집'에 온다고 한다. 형 집에서 고향 집으로 말이 바뀐 것이다. 작은 변화지만 매우 중요하다. 고향 집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집에 더 오고 싶어 하고, 더 머무르고 싶어 한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끌어낸 것일까?

지속 가능한 문화적 도시재생 분야 전문가인 펜실버니아 대학의 Tom Burrup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 답을 찾았다. 그에 따르면 지속할 수 있고 머무르고 싶은 도시가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는 `공간에 대한 연민'이다. 무엇인가 경험한 것과 추억이 필요하다. 이런 연민과 기억은 사람 간의 활동에서 나온다. 즉 어떤 지역이나 공간에서 경험한 활동이 있어야만 그 공간에 머무르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하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는 아름다움(美)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심미적인 무언가가 도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와 공간은 아름다워야 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쫓는다.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와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고 오래도록 머문다. 셋째는 삶의 편리함을 지원하는 인프라 구축이다. 교통체계, 환경, 위생, 의료, 정보통신 등 다양한 필요 시설이 잘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도시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오래도록 머무른다.

`형 집'이 `고향 집'으로 바뀐 것도 같은 이치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사시던 집은 우리 가족에게는 `연민의 공간'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고 수많은 사건과 활동을 간직한 공간이다. 기억할 것이 있어야 추억할 수 있고 머무를 이유가 생겨난다. 집에 꽃과 나무를 심고 잔디도 깔았다. 집 모양도 원형은 유지했지만, 색상을 바꾸고 공간 배치도 새롭게 했다. `꾸밀래'라는 별명을 가진 안젤라의 감각과 노력으로 고향 집은 사람들이 감탄할 만큼 아름답게 변모했다. 연민의 공간이 아름다운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집안의 불편했던 시설들도 모두 쾌적하게 바꾸었다. 화장실과 주방도 수리했고 소소한 작은 것들도 손을 보아 생활의 편리함을 증가시켰다. 집안 여러 곳에 가족이 모여 대화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장소도 마련하였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서로 만나 이야기하고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하여 `형 집'은 가족들이 더 자주 찾고 더 자주 머무르고 싶은 `고향 집'으로 재탄생했다.

우리의 도시재생 정책은 어떠한가? 도시와 사람의 기억을 모으고 추억할 수 있는 연민의 공간을 보존하고 있나? 사회적 활동을 위한 다양한 공간은 충분히 만들고 있나? 도시는 아름답게 바뀌고 있나? 편리한 환경과 지원 인프라는 충분한가? 모든 것을 밀어 버리고 모든 것을 다시 세우는 개발형 도시재생은 정말 그만두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도시 만들기는 이미 고향 집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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