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여는 개천
하늘을 여는 개천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0.10.1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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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개천절이 있어서 더욱 더 뜻 깊은 10월도 어느덧 중반을 지났다. 올 해 개천절은 코로나 19로 인해 유명무실하게 지나간 듯하다. 환인(桓因) 천제의 명을 받은 환웅(桓雄) 천왕께서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태백산(오늘날의 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연 것을 지칭하는 개천(開天) 즉, 하늘을 열었다는 참된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본다.

하늘을 연다는 `개천'이란 말의 참다운 뜻을 알기 위해선 먼저 천(天) 즉, 하늘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막연하게 민족주의의 뜨거운 감정만으로 환웅, 광명이세(光明理世), 홍익인간(弘益人間) 등을 아무리 되뇌어 봐도 별무소용이기 때문이다. 하늘이란 단순히 영어의 `스카이(SKY)'를 말하는 것이고, 환웅께서 그런 하늘을 처음 열고 거울, 북, 검 등 천부의 인(印) 세 가지와 풍백 우사 운사 등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에 내려오셔서 신시를 여셨다는 단순한 신화적 스토리텔링만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총 366자로 이뤄진 `삼일신고'의 첫 번째 훈인 천훈(天訓)을 통해, 환웅천왕께서는 당신께서 여신 하늘 즉, 天(천)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혀 놓고 있다. “蒼蒼非天(창창비천) 玄玄非天(현현비천) 天无形質(천무형질) 無端倪(무단예) 无上下四方(무상하사방) 虛虛空空(허허공공) 无不在(무부재) 无不容(무불용) 즉, 저 푸른 것이 하늘 아니며, 저 가물가물한 것이 한울이 아니다. 한울은 형체도 바탕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으며, 위아래 사방도 없고, 겉도 속도 다 텅 비었고,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무엇이나 싸지 않은 것이 없다.”

이처럼 환웅천왕께서 삼일신고의 천훈을 통해 분명하게 천명했듯이, 한울을 열었다는 개천(開天)이란 우리와 무관한 수천 년 전 환웅천왕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한울' 즉, `하나' 내지 하늘의 참 생명을 깨달아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 바로 하늘을 연다는 개천이기 때문이다. 결국 태양보다 더 높고 밝은 우리 내면의 본심인 `하나'를 밝히는 일이 바로 개천절의 본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늘의 참 생명인 `하나'를 밝히고 광명이세(光明理世) 홍익인간(弘益人間)하는 지혜로운 `하늘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은 이미 하늘을 열고 `하나'를 깨달아 마친 `하늘 사람'이란 생각, 언젠가 `하나'를 깨달아 `하나'의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림으로써 널리 인간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홍익인간을 실천하겠다는 다짐 등 모든 생각들을 지금 즉시 쉬고 또 쉼으로써, 시공(時空)을 초극하여 즉시 하늘의 참 생명과 하나가 되면 그뿐이다.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담배 끊는 담배'를 피우는 수행을 해야 하며, 하늘 사람이 되기 위한 한민족 고유의 `담배 끊는 담배'는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이다.

지감은 생각 감정을 그치고 무념무상이 되어, 하늘 속으로 녹아드는 수행이다. 생각과 감정을 그치는 지감 수행이 여의치 않고 온갖 생각 감정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면, 호흡을 고르는 조식(調息)이 요긴하다. 거친 호흡을 고르면, 기(氣)가 가라앉고, 기가 가라앉으면 생각 감정이 고요해지면서 생명의 본바탕인 하늘과 하나가 된다. 호흡을 고를 정도의 여유도 없이 혼란스럽다면, 그와 같은 혼란 상태를 유발하는 환경과의 접촉 자체를 금하면 되는데, 이것이 바로 금촉(禁觸) 수행으로, 여타 종교에서 말하는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지감, 조식, 금촉 수행을 통해 삼천 리 방방곡곡에서 몸 건강하고 마음 편안한 하늘사람이 넘쳐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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