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딴지
뚱딴지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0.10.14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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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노란색 꽃밭이다. 삼한의 초록길 가장자리에 노란색 금불초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는데 키 작은 꽃들 가운데 대궁이 훤칠한 꽃 열댓 포기가 마치 나지막한 꽃들을 호위하듯 서 있었다. 진노랑 꽃송이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해바라기도 아니고 무슨 꽃일까 싶어 눈여겨 살펴보니 뚱딴지 꽃이 아닌가.

웬 뚱딴지란 말인가. 뚱딴지, 또는 돼지감자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식물은 우리 토종식물 같지만,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라고 한다. 키가 우뚝하고 노란색 꽃이 마치 해바라기와 비슷하다. 줄기나 잎, 예쁜 꽃을 보고 감자같이 생기지 않았는데 뿌리를 캐었더니 울퉁불퉁한 감자 같은 덩이가 나와 꽃모양과는 영 딴판이라 `뚱딴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뚱딴지는 못생긴데다가 별다른 맛도 없어 가축사료, 특히 돼지먹이로 사용되었다 하여 `돼지감자'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또한 뚱딴지를 비유해 흔히 하는 말이 있는데,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나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 뚱딴지같은 사람이야”라고들 한다.

고향 마을 어귀 밭둑 가에도 해마다 곱게 피어 있는 노란 꽃을 볼 수 있었다. 돼지감자라 하여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친구들은 이미 먹어본 경험이 있는 듯했다. 먹거리가 곤궁하던 시절이라 논 가나 밭둑에 잡초 무성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뚱딴지는 군입을 다실만 한 부담이 없는 친근한 식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느 날 친구가 처음 보는 울퉁불퉁한 감자 같은 것을 먹어보라고 내밀었는데 나는 `돼지감자'라는 이름 때문인지 도리질하며 입에도 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즈음에는 뚱딴지가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저 밭둑 같은 척박한 곳에서 자생력으로 자라던, 잡초 취급 밭던 뚱딴지가 언제부터인가 성인병에 좋다 하여 종종 방송에 소개되고 입소문을 타면서 관심 받는 채소가 되었다. 더러는 농작물로 재배해 농가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뚱딴지는 엑기스, 분말, 장아찌, 차 등으로 만들어져 건강식품 코너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뚱딴지가 신분상승을 한 셈이다.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뚱딴지 인기가 이렇다 보니 그 꽃이야 말해 뭘 하겠는가. 이제 꽃밭에 뚱딴지 꽃이 피어 있다고 의아해할 일이 아니다. 뚱딴지 꽃이 예쁘다 하여 그 열매도 꼭 고와야 할까. 모양새가 곱고 예쁘지 않아도 건강에 좋다 하니 무얼 더 바라겠는가.

식물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다. 누구나 처음 사람을 만날 때 외모가 준수하면 더욱 호감을 갖게 되지만 한 번 두 번 만나 관계를 맺다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다. 알면 알수록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사람을 돋보이게도 하고 품위를 떨어뜨리기도 하지 않던가. 사람이든 물건이든 겉모양만 보고 쉽게 어떠어떠할 것이라고 속단할 일이 아니란 듯이 뚱딴지 노란 꽃이 바람에 살랑이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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