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빼앗은 색(色)
마음을 빼앗은 색(色)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0.10.0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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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그동안 뚜렷이 좋아하는 색을 드러내지 못했다. 일곱 빛깔 무지개에서 마지막에 걸쳐 있는 신비의 보라를 이제야 당당히 좋다고 하니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만큼 표현의 자유조차 여유를 갖지 못하고 지냈다고나 할까. 삶이 지나칠 만큼 각박해서만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둔했던 자아, 그리고 나만의 색깔을 미처 품어볼 생각조차 못한 채 이어졌던 하루하루가 아니었나 싶다.

어느덧 희끗한 머리가 셀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것이 지나온 날의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면 이제는 심신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넉넉하고 유순해지는 시기라 생각한다. 시간에 순응해가며 육체와 마음의 의복을 정제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길가의 작은 풀꽃 하나에도 허리를 숙여 정성스레 탐닉하는 버릇이 생겨난 것마저 다행한 여유였다.

그중에서도 신이 만들어낸 색감에 취하는 사건이 첫 번째이다.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면 키 낮은 제비꽃부터 한 몫을 감당했다고 본다. 앙증맞은 보랏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모습이란 평화가 먼 곳에 있지 않고 아주 가깝게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계기였다.

좋아했던 색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아마 그때그때 마음에 닿는 색이면 만족했으리라. 곰곰이 돌아보니 가고 오고 쌓이는 세월이란 더께가 지금의 나를 더 과감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다. 나이 들어가는 탓이라 해도 괜찮다. 좋으면 좋다 하고 싫으면 싫다 하는 표현을 거북하지 않게 알리는 삶의 방식에 젖어든 셈이다. 나도 모를 만큼 긴장하며 지나온 날들 가운데 차츰 자신감이 늘어난 탓이리라.

보라색이 좋다. 담긴 의미도 몰랐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색이었지만 이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선호하기 시작했다. 미지의 색감으로 다가온 것이다. 차분하게 압도해오는 중압감도 있었으며 고혹의 빛이 되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묻어 있었고 쌓인 설움이 몰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아득한 위로가 스며오는 것 같기도 했다.

보라는 부정과 긍정의 의미를 표현하는 색이라 들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는 항상 긍정의 바탕을 지니며 살아가려 노력해왔다. 나름대로 선택에 최선을 다해왔다. 무거운 감정들도 긍정의 힘으로 인해 가벼워질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유익한 변화 중 하나였다. 그래서 보라를 더 좋아하는지 모른다. 긍정의 표현 속에는 신비함, 고귀함, 화려함 등이 담겨 있다고 하니 듣기만 해도 가까이 두고 싶어졌다.

한편, 부정의 표현은 고독과 우울, 상처와 갈등, 등이라고 한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던 내 삶의 파편들이 무의식중에서도 그늘진 우물 속을 헤매게 만들어 놓았던 것 같다.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길을 가다가도 보라색 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고야 마니 어쩔 수 없다. 마음을 뺏은 신비의 색, 거기서 얻는 위안과 기쁨이 삶을 한층 즐겁게 한다면 보라예찬에서 멈추지 않으려 한다. 가을빛이 높던 날, 무르익은 보랏빛 국화 화분 여러 개를 사서 아예 집 화단에 옮겨 심었다. 부정보다는 긍정의 심기를 꽃피우며 죽는 날까지 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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