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와 함께하는 우리 마을 노래자랑
한가위와 함께하는 우리 마을 노래자랑
  • 이현호 청주대성초등학교 교장
  • 승인 2020.10.0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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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현호 청주대성초등학교 교장
이현호 청주대성초등학교 교장

 

가을의 시작은 음력 팔월 보름 추석과 함께 시작된다고 하겠다. 추석의 다른 말은 중추절, 가배, 가위, 한가위라고도 한다. 여러 가지 용어 가운데 한가위란 말이 추석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인 것 같다. 추석은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가장 풍성한 명절이다. 추석날 아침에는 햇곡으로 차례를 지내고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조상 묘에 찾아가 성묘로 인사를 드린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추석을 기점으로 짧게 입던 여름옷을 벗어 버리고 긴 팔, 긴 다리의 가을옷으로 갈아입는 계절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였다. 추석에는 명절이란 기회를 얻어 가을 겸 겨울에 입을 새 옷(때때옷)과 새 신발을 부모님으로부터 선물 받아 친구들과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새 옷과 새 신을 자랑하기도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추석이 되면 시골 초등학교에선 가을 운동회가 열린다. 도시에 나가 직장을 다니던 마을 주민들이 돌아와 집안 어른들께 인사도 하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동창회도 열린다. 대운동회가 열리는 날은 학교에 재학하는 어린이들과 동네주민들이 맛있는 음식을 서로 나누며 경기도 하고 서로의 친목도 도모하며 즐겁고 신나는 행사로 축제의 장을 이룬다.

한가위 둥근 보름달이 뜨는 저녁에는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큰 마당에서는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 사람들도 놀러와 함께 즐기는 마을 노래자랑이 열리는 시간이다. 젊은 총각, 처녀들에겐 이 시간이 가장 설레고 기대된다. 왜냐하면 이날은 이웃에서 원정 온 총각, 처녀들의 얼굴도 볼 수 있고, 잘하면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그룹미팅의 날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마을의 노래 자랑하는 날이면 처음 보는 긴 머리를 한 밴드맨들과 기타, 드럼들의 여러 악기 소리가 신기하고 마냥 좋았던 생각이 든다. 온종일 밴드들이 연습하는 것을 동네 친구들과 신기하게 지켜보다 보면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노래자랑을 구경하게 된다. 대회 상품으로는 양은그릇을 비롯한 잡다한 가정 살림용품들이 무대 앞에 진열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회자는 동네에서 말 잘하는 청년 회장쯤 되는 사람이 잘은 모르지만 출연자들에게 얼마간의 참가비를 받고 노래자랑을 한다. 그리고 심사위원은 동네의 어른이나, 도시에 나가 대학을 다니는 동네에서 공부 잘하던 대학생이 심사를 본다. 조명은 백열등 몇 개가 전부이고 무대 뒤에는 흰 광목을 둘러 무대 배경을 대신했었다. 중년의 마을 부녀회장의 구성진 트로트와 마을의 끼 있는 청년들이 주로 출연해 유행했던 노래도 부르고 흥에 겨우면 신나는 트위스트 춤도 곁들여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던 기억이 난다. 마을의 노래자랑은 TV도 없던 그 시절엔 고향마을의 최고 예능인 셈이다.

나훈아의 콘서트로 둥근 한가위 달을 보며 고향과 부모를 그리워했던 올 추석은 동네 노래자랑을 기대했던 수많은 아마추어 가수들에겐 속상하고 아쉬운 무대가 되었다. 이렇게 아름답던 고향의 한가위 풍습인 마을 노래자랑의 취소로 그동안 쌓았던 노래실력과 댄스를 선보이지 못해 서운한 마음이 드는 한가위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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