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막다른 골목
생각의 막다른 골목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0.10.0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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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나는 내 생각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을까?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안 된다.

자야 된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죽기 살기로 밀린 숙제를 해야 한다. 받아먹은 걸 토하는 것도 토하는 것이지만 너무 많이 미뤄 염치가 없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 빨리 자자! 자려고 하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조그만 불안감이 살짝 올라온다. 이게 뭐지? 웬 불안감? 뭔가 안 좋은 일이 새기려나? 인생 대충 마무리한 인간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봤자 별일 아닐거구. 식구가 아픈가? 그 사람은 골골해서 걱정이야. 이 정도면 그나마 종을 잡을 수 있는 생각인데. 뜬금없이 첫사랑이 생각난다. 첫사랑이라고 해봐야 짝사랑이었지만, 뭐하고 지낼까? 그러다 갑자기 군대 갈 때 생각이 난다. 물론 첫사랑에게 군대 간다고 신고하고 갔기 때문이긴 하지만. 내가 지금 뭔 생각을 하는 거지? 처음에 그놈의 불안감이 왜 올라온 거지? 나도 모른다. 슬그머니 떠올라서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당연히 잠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엎치락뒤치락한다. 자려고 하면 더 잠이 안 온다.

잠을 자면 안 되는데 잠이 와서 죽을 지경이다. 운전을 하는데 하품이 난다. 거기서 졸면 죽음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고 눈에 침을 발라보지만 하품이 나와 눈을 비비는 순간 어느새 깜빡했다. 깜빡했다가 정신이 드는 순간을 떠올려보라 등골이 서늘하다. 시속 120킬로로 달리면서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해보라. 경험해본 사람은 알지만 모골이 송연해진다. 환장할 노릇이다. 내 눈꺼풀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졸음을 쫓으려고 눈을 부릅떠보지만 효과가 없다는 건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마음대로 되는 게 없네.

열심히 밀린 숙제를 하고 있는데 폰이 드르륵 한다. 문자가 왔다. 글은 내일까지 주셔야 합니다. 숙제가 머리에서 사라진다. 뭐에 대해서 쓰지? 그간 생각해봤던 주제들이 뒤죽박죽으로 떠오른다. 걱정이네 내일까지 글을 써야 한다고? 밀린 숙제도 너무 많이 밀려서 이번 주 안에는 해결해줘야 하는데.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숙제도 못하고 내일 줘야 되는 원고도 쓰지 못한다. 죽도 밥도 안 된다.

생각을 쫓아내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응시한다. 이놈 올라오기만 해봐라. 뭐가 올라오는지 한 번 보자.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면 눈만 아프다. 눈이 아프다는 건 눈으로 뭔가를 봤다는 말이다. 눈으로 보는 건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생각한다는 말이다. 생각을 쫓기 위해 생각을 하니 생각이 쫓아지나? 안 되지.

눈에 힘을 뺀다. 마음을 풀고 쉬어야 그놈이 오지. 푸근하고 고요하게 침묵 속으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왜? 어느새 졸고 있으니까. 왜 잘까? 피곤하니까? 왜 피곤하지? 그거야 쉬지 않고 생각을 하니까 그렇지. 그러면 생각을 쫓아내면 자지 않겠네? 그렇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쉴 수 있고 쉬면 피곤하지 않으니까 안 졸지.

생각 쫓으려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피곤해지고, 피곤하니까 자고. 원래 사람 사는 게 그렇다. 일하고(생각하고), 생각하면 피곤하니까 자고. 자고 나면 피로가 풀리니까 또 생각하고(혹사하고). 널뛰듯이 나대다가, 시체처럼 죽었다를 반복하는 게 인생이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피곤하지 않다. 그래서 자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안 눕고 안 자는 사람의 이야기가 생긴다. 마음이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쉬이 늙지도 않고, 정신이 항상 깨어 있게 된다. 정신이 항상 깨어 있으니까 안 자지.

널뛰듯이 나대고 시체처럼 죽는 반복 사이클을 벗어나 보려고 생각을 들여다보니까 그렇게 보는 것도 생각이라서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럼 어쩌라구? 그걸 물으면 안 된다. 그것도 생각이니까?

/충북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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