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차별·착취 … 저항운동에 불 붙였다
극심한 차별·착취 … 저항운동에 불 붙였다
  • 엄경철 기자
  • 승인 2020.09.24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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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일제강점기 충북경제 - 노동현장 동맹파업
청주·충주지역 전형적 노동집약형 제사공장 수탈 심화
여공들 저임금·열악한 환경에 불만 폭발… 파업 줄이어
1931년 영동상회·1936년 충주 광산노동자 동맹파업
도내 곳곳 일본인 착취 대항… 매일신보 등 언론도 관심

 

일제강점기 식민경제체제를 확립한 일본의 수탈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됐다. 특히 일본인들의 차별과 착취가 극심해지면서 노동현장의 불만이 높아졌다. 급기야 청주, 충주의 제사공장 등 일부 노동현장에서 파업을 통해 차별과 착취에 대한 저항운동이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잠사업의 발달로 청주와 충주에 제사(製絲)공장이 운영됐다. 제사공장은 작업 공정상 많은 인력이 필요한 전형적인 노동집약형 산업이다.

고신문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기록에 의하면 1920년대부터 청주와 충주에서 운영됐던 제사공장인 남한제사는 일제강점기 일본 군시제사㈜의 조선 분공장이었다. 청주공장은 1929년 설립됐다. 제조업 불모지 시절이었던 당시 군시제사 청주공장은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장이었다.

국내에 진출한 일본자본 제사공장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형태였다. 당시 국내 제사공장은 값싼 노동력을 투입해 중급품을 생산하는 한편 누에고치 가격을 상대적으로 억제시켜 수익을 증대시켰다. 제사공장은 저임금 등의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어린 여공들이 많았다. 어린 여공들이 노동 착취를 당한 것이다.

열악한 조건의 노동환경이 지속되자 여공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단행했다.

매일신보(1931년 9월10일)는 `청주군시제사 파업, 여공 등 전부 파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매일 11시간 40분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노동임금은 최고 70전 최하 15전으로 평균 25전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1939년 4월26일)도 청주군시공장 여공들의 파업을 전했다.

이 신문은 “청주에 있는 군시제사공장의 여직공 오백여명은 24일 오후 3시경부터 동맹파업을 하고 아직까지 해결을 보지 못한 채 25일에도 여직공들은 공장 내 기숙사에 들어 있는 모양이다. 공장측에서는 일체 면회를 사절하고 있고 경찰에서도 엄중히 경계를 하고 있어 내용에 대하여 자세한 것은 잘 알 수 없으나 연도 말의 상여가 적다는 것과 현재의 임금이 적으니 올려달라는 이유라고 한다”고 보도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였던 여공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을 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낮은 임금 등 당시 노동실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충주에는 오가와 제사공장이 있었다. 이 공장 역시 여공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렸다. 자료에 의하면 여공들은 1929년 동맹파업에 들어갔다. 일본 자본가의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민족 차별과 노동 착취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1929년 10월7일 오전 11시 충주읍 오가와 제사공장의 여자 직공(여공) 27명은 평상시와 같이 교대한 뒤에 먹던 점심을 점심시간이 아닌 11시에 먹었다. 이에 공장주 일본인 오가와의 부인이 힐책하자 18명의 여공은 파업과 함께 공장에서 나왔다. 10월8일 18명 중 3명만이 복귀하고 나머지 15명은 복귀하지 않았다. 결국 파업을 주동한 4명이 강제 퇴직됐고, 14명은 공장에 돌아오는 것으로 동맹파업이 일단락됐다.

충주에서는 야간광업소 인부파업 사건도 있었다. 디지털충주문화대전에 의하면 충주 야간광업소 인부파업사건은 1936년 충주지역 광산 노동자들의 동맹파업이었다. 충주지역 태창광업소의 노동자들은 생사공장 여공들처럼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었다.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자 1936년 7월18일 충주군 노은면 야간광업부 태창광업소 소속 노동자 200여명이 임금인상과 대우개선을 요구하며 동맹파업을 벌였다. 광업주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요구를 수용하고 조업 재개를 요구했지만 파업 노동자들은 구체적인 임금 인상액과 처우개선 조건을 요구하며 파업을 계속했다.

1931년 12월에는 영동상회 현미직공 20여명이 임금인상, 대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동맹파업을 벌였다. 이처럼 일제장강점기 청주, 충주 등 도내 곳곳에서 전개된 동맹파업은 일본인의 차별과 착취에 맞서 싸운 노동운동이었다.

/엄경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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