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같은 얼굴
햇살 같은 얼굴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0.09.17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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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그의 밝은 표정 속에는 목소리까지 몫을 더한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잠깐 스치는 모습에서도 그때 그대로여서 놀라울 뿐이다. 이야기를 건네본 적은 없다. 이름도 성도 모른다. 내가 이곳에서 살게 된 지가 사십 년이 넘었으니 그의 얼굴에 내려앉은 세월의 흔적으로 나이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아마 예순 전이지 싶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버스터미널이 옮겨졌다. 옮기기 전부터 보아왔던 터 그때는 앳된 청년의 시기였으리라. 내 기억으로는 그가 항상 버스에 올라 승객들에게 신문을 팔고는 했었다. 주간이나 석간을 들고 외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터미널풍경이었다. 이젠 각자에게 스마트폰이라는 기기가 주어졌으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굳이 종이로 만든 신문은 나부터도 구입을 않는 편이다.
다음 기회에 또 그를 볼 수 있었다. 여전히 그에게는 터미널이 직장인 것 같았다. 그때야 신문을 팔았지만,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서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버스 편으로 오고 가는 물건들을 옮기는 일에 열중이었다. 하는 일도 세월에 따라 변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한 사람의 일생에 대해 그림을 그려 보았다. 오로지 현재에 충실하고 있는 열정만 보였다. 신문을 팔던 그 맑고 카랑한 목소리, 하회탈처럼 입꼬리 가득 올라간 그의 얼굴이 이 순간도 터미널풍경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얼굴이란 의미는 영혼이 들어가고 나가는 통로라 한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잠시 동안 한 사람의 영혼에서 맑고 투명한 느낌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허름한 작업복조차 환하게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몇 번을 넘기고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그를 향해 찬사가 흘러나왔다. 나이가 들면 스스로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던 누군가의 이야기가 머리를 스치고 있다.
때로 섣부른 판단의 감정들로 후회한다. 조금 더 여유 있게 바라보며 말을 토해내었을 걸 하는 마음이지만 이미 쏟아진 물인 걸 어쩌랴. 그날 이후로 많은 생각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실없이 헤프게 웃으며 살아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먼저 밝은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람을 겉으로 평가할 순 없지만, 영혼이 들어가고 나가는 통로가 보기에도 어둡게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같지 않을까.
과연 행복이란 어떤 것이며 질량은 어느 정도인지 돌아본다. 수많은 사람 틈에서 나 자신 만큼 소중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 생각하면 주어진 하루가 그저 감사할 것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그날 터미널에서 우연히 제 삼자의 눈으로 바라본 그 사람의 표정도 분명 행복한 모습이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언정 짐작은 실제이기를 바랬다.
세상을 훔쳐 본 것이 아니다. 스쳐 지나가는 그림처럼 그 안에 담긴 뜻과 모양에서 의미를 찾은 유익한 하루였다. 잠깐이었지만 한 사람의 일생이 내 눈에는 아름답게 각인되었다. 등에 지닌 삶의 무게를 고단하게 여기는 표정이 아니어서 좋았다. 이제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영혼이 드나드는 길목에서 행복한 방향은 어느 쪽인지 거듭 생각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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