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중심의 궤도, 이제 그만
인간 중심의 궤도, 이제 그만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0.09.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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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온통 사방이 황금빛을 띠는 들녘 한가운데 서 있다. 조만간 트랙터 한 대가 들어와 휙 훑고 나면 공룡 이빨 같은 큰 건초더미를 뚝뚝 떨어뜨리고 사라질 것이다. 논둑을 스칠 때마다 떠날 때를 아는지 메뚜기 떼들이 풀쩍풀쩍 낱알처럼 튕긴다. 올해는 유난히 장마 기간이 긴 까닭에 메뚜기 개체 수가 더 많은 것 같다. 얼마 전 아프리카 케냐 북부에 출몰한 거대 메뚜기 떼가 중국의 윈난성까지 습격하면서 식량난 우려가 컸다. 농업 혁명과 잉여생산물, 그리고 정복 전쟁과 가축 균의 인간 침투와 진화 이래저래 임계점이다.

“왜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발명품)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파푸아 뉴기니의 한 정치인이 미국의 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에게 던진 물음이 깊은 파장을 남긴다. 은연중 우리도 서구 문명에 빗댄 열등의식을 잠재적으로 품은 까닭이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균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하여 다시 『총균쇠』를 꺼내 읽었다. 저자는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고 밝힌다. 확언하면 우생학적 특질로 볼 것이 아니라 지리적, 기후적 특성으로 보는 환경결정론이라는 의미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식물군의 이점은 겨울은 온난 다습하며 여름은 길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대에 속한다는 점이다. 이 지역은 기름진 토양과 기후 덕분으로 야생 식물 작물화와 야생 동물 가축화에 용이했고 이를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여 잉여 생산에 따른 자원 축척과 잉여 시간으로 전문 직업이 출현했다. 농작물 기록을 위한 문자 발명과 농기구 개발은 강철 발명으로 이어지고 결국 식민지 개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가축을 이용한 농작물 잉여는 부정적인 면도 남겼다. 가축은 인간에게 자신들의 병원균을 옮기면서 인간을 또 다른 숙주로 삼았다는 점이다. 식민지 개척은 쇠, 총, 즉 강철의 역사라지만 궁극적으로 균의 침투로 인한 균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간 빗장을 걸게 하고 전 세계의 경제를 마비시킨 코로나바이러스 출현은 예상 못 한 재앙은 아니다. 1532년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가 페루의 고지대 도시인 카하마르카에서 168명의 군사로 8만 대군의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의 군대를 짧은 시간에 전멸한 것은 말과 총의 영향보다도 스페인 군대가 자연스럽게 옮긴 가축 병원균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균의 역사도 인간의 문명 속도만큼 빠르게 진화한다. 앞으로 더는 인간중심의 경제성장으로 욕망할 때가 아니다. 지구 환경 문제와 인간의 문명 발달 문제는 정비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은 여러 면에서 인간 중심의 궤도를 많은 부분 수정케 했다. 인간이 빚은 욕망은 누린 만큼 치러야 할 고통도 많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 반하여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호모 사피엔스』를 통해 농업혁명은 인간을 끊임없이 노동하는 존재로 만들고 가축에서 출현한 병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부정했다. 단지 농업 때문에 그랬을까? 그 어떤 경우라도 우리는 욕망한 만큼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다만, 인간 중심의 궤도를 수정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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