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UN)으로부터 한반도의 현대사
유엔(UN)으로부터 한반도의 현대사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0.09.1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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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한국전쟁 발발 후 전세(戰勢)가 심상치 않자 1950년 7월 1일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요청에 따른 美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로 스미스부대(미 제24사단 21연대 1대대장이었던 Charles B. Smith의 이름에서 유래)가 최초로 한반도에 투입되면서 전쟁의 양상이 국제전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전쟁 발발로부터 미군의 참전 이전까지는 국제사회가 승인한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를 침략한 내란의 시기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미스부대가 공산군의 남하를 지연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고 공산군의 세력을 최전선에서 직접 판단한 것은 맥아더장군의 상륙작전을 실행하는데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오는 9월 15일의 꼭 70년 전이 맥아더 장군이 침략군의 허를 찌르고 맥을 끊어 북진(北進)을 가능하게 했던 인천상륙작전일입니다. 리암 니슨이 맥아더 장군 역을 열연한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전쟁의 양상은 한국전쟁의 발발과 동시에 북한 정권에 의한 내란, 미군 최초 스미스부대의 참전으로 내란에서 국제전으로의 전환, 곧이어 7월 25일 유엔군사령부가 설치되면서 국제전의 확대로 이어졌습니다.  
1950년 7월 7일 채택된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제84호에서, 유엔 회원국들은 미국이 지휘하는 통합사령부에 군대를 보낼 것, 미국이 군사령관을 임명할 것, 참전 회원국들은 작전 중 자국기와 함께 UN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미국은 작전수행에 관한 보고서를 안보리에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이에 근거해 설치된 유엔군사령부는 한국전쟁을 수행하고 지금까지 주둔하며 한반도 휴전상황을 감시하고 있는데, 지금의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의 세 개의 직위(Three caps)를 동시에 겸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에서 독립 이후 한반도에 하나의 민주정부를 수립하고자 할 때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의 갈등이 시작되어 대화가 어려워지자, 미국이 이러한 한국문제를 UN총회 의제로 상정시킴으로써 한국문제는 마침내 유엔의 무대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한국문제(Korean Question)는 일본으로부터 독립에 이은 전후처리, 남?북 분단에 따른 하나의 민주정부 수립, 한국전쟁과 휴전, 유엔의 동시가입, 북한문제를 넓은 의미의 한국문제로 본다면 북한의 인권문제와 핵문제 등을 포함한 북한문제까지 유엔에서 논의되었거나 논의되고 있는 문제로써 우리는 유엔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한국이 광복 후 완전?정상국가로 출발하려는 순간부터 유엔의 창설과 함께 유엔과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입니다.
한국문제 또는 북한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결국 한반도 통일을 고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대하고 불운한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군과 유엔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지혜롭게 활용하면서 통일로 향한 강하고 행복한 국가로 갈 것이냐, 이들을 한반도 평화의 걸림돌인 외부세력으로 치부하고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이냐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자결권(自決權)은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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