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그때다
지금이 그때다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0.09.0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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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요즘 밤에 잠자리에 들 때, 잠시 마음이 설렌다. 무슨 좋은 꿈이라도 꾸려나 싶겠지만, 설렘의 이유는 새벽 달리기다. 이 잠을 자고 새벽이 오면 뛸 수 있구나. 요즘 나는 달리기에 푹 빠져 있다. 태풍 속에서도, 빗속에서도 나의 달리기는 멈추지 않는다. 달리기를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면 그 나이에 무릎 연골을 생각하라든지, 몸 생각해서 평지나 걸으라든지 조언이 한 가득이다. 그 걱정 어린 조언에는 귀를 딱 막은 채 나는 달리기할 생각에 마냥 행복하다.
3년 전 부다페스트에서부터 르?宣啖㎎묽沮?헝가리,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 6~7개국을 넘나들며 걸었던 2000킬로미터의 여정 덕분에 나는 원 없이 걸어보았었다. 귀국한 후에도 틈이 나면 종종 캠퍼스 곳곳을 걸었고, 걷기의 기쁨을 칼럼으로 쓴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걷는 동안 생각을 정리한다거나, 마음을 편히 한다고 말하는데, 사실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이런저런 후회와 상념들로 걷는 내내 심각해지기 일쑤였다. 물론 걷는 시간이 길어지면 후회와 상념들이 정리되기도 하지만, 종일 걸을 수 없는 최근의 걷기는 온통 어지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달리기는 다르다. 발의 뒤꿈치부터 지면에 닿으면 몸 특히 무릎에 전해지는 충격이 크므로 `미들풋'즉 발의 중간으로 착지하는데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400미터 운동장 트랙을 뛰다 보면 다섯 바퀴가 넘어갈 때쯤엔 상념이나 후회 따위가 내 안에 있었던가 싶게 마음이 텅 비어 버린다. 숨차고 힘든 나 자신 외에는 무얼 생각할 틈도 없다. 바퀴 수가 더 늘어나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뛸 수 없을 지경까지 가면 할 만큼 했다는 성취감이 한가득 밀려든다. 행복, 절정의 순간이다.
달리기를 생각하면 엉뚱하게도 법정스님이 떠오른다. 요즘도 나는 입적하시기 전 펴내신 산문집을 읽거나 법문을 찾아 듣곤 하는데, 법정스님은 늘 일관되게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라. 지금이 바로 그때다'라고 말씀하신다.
`진정한 행복은 이다음에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다음에, 이 일 먼저 마쳐놓고 어디 시골에 내려가서 집 한 채 지어놓고 행복을 맞이하리라 설계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진정한 행복은 이다음에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겁니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십시오. 행복을 누렸을 때는 한순간이었습니다. 미래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다른 때가 우리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좋은 날이 어디 따로 있어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좋은 날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참, 달리기를 할 때 나만의 원칙이 있다. 내일을 기약한다는 것! 오늘 맘껏 뛰고 싶다고 몸을 혹사하면 내일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력 질주로 바람을 가르는 시원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만, 질주 본능 뒤에 닥칠 고관절 통증은 모두 내일의 몫으로 남는다. 하지만 내일 잘 달리자고 오늘 쉬어버리면 오늘의 달리기 기쁨은 맛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오늘과 내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둘인 듯 하나다. 오늘이 곧 내일이고, 내일은 곧 오늘이듯.
오늘 최선을 다해 달리고, 또 내일의 달리기를 뛸 준비를 하는 것, 요즘 나는 달리기를 통해 삶을 다시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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