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모여 산다
고립, 모여 산다
  •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 승인 2020.09.0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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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평일과 주말의 옷차림새가 많이 다르다. 도심의 변두리생활이다 하면, 아담하지만, 별장 같은 곳에 너른 잔디밭, 그리고 한편의 작은 텃밭이나 주변에서 주섬주섬 푸성귀를 따다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거나, 삼겹살을 구워먹는 정도가 보통의 생각일 것이다. 실상은 흙이 묻은 작업복은 해지고, 벌레에 물리지 않으려 모기장 같은 옷을 덧입은 남루한 행색. 시골 생활은 결코 한가한 전원생활이 아니라 노예(?)에 가깝다. 너른 잔디밭에는 쇠뜨기, 토끼풀, 바랭이 등이 잔디를 점령했고, 과일나무는 가을이 아닌데도 벌거숭이에서 민숭이가 되었다. 벌레란 벌레들이 다 모여 폭식을 하고, 그 밑으로 검정색의 작은 알갱이들로 수북이 쌓였다. 달갑지 않은 존재의 흔적을 남겼다.

평일 그들만의 세상에 주말 한 인간이 나타나 평온한 시간을 깬다. 한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길어야 해가 떠있는 시간, 송골송골 맺히고 흐르는 땀 따위, 강하게 내리쬐는 열기 따위는 방해요소가 아니다. 고립된 공간에 외롭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리고 또 다른 녀석들, 한 인간이 오던 오지 않던 늘 있던 원주민(?)인 녀석들이 있다.

그들은 늘 소리를 낸다. 텍스트나 음성으로 표현하거나 흉내 내기 힘든 소리이다. 종류를 알 수 없는 여러 종류의 풀벌레 소리, 괴상한 원숭이 울음소리 같은 날짐승 소리, 그리고 간간이 멀찍이서 들려오는 생뚱맞은 닭의 찢어지는 소리,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서 소리를 낸다. 칸막이도 없이 개방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리는 곧 화음이 된다. 한 곳에서 잠시 멈추었다 싶으면, 다른 한쪽에서 다른 소리를 낸다. 몇몇은 자리를 옮겨 어울릴법한 녀석들과 소리를 섞는다. 그러다 여기저기서 일제히 소리를 낸다. 서로 협의와 합의도 없이 설계되지도 않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내는 소리는 가변형의 공간이 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소리를 낼 뿐 서로 침범하거나 경쟁이 없다. 서로 공간을 인정하고 지켜준다. 기록(?)을 앞세워 규정을 만들거나, 누르거나 할 분위기도 아니다. 규칙적이지도 않고 결합이 안 될 것 같은 소리는 바람과 함께 트인 공간이 되었다. 달갑지 않겠지만, 나는 그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 한 부분의 공간을 차지한다. 그들이 먼저 만들어 놓은 공간, 소리는 공간을 표현한다. 그들의 공간은 유동적이지만 살아있음을 알려 주기에 숨소리, 발걸음 소리조차 자제하게 한다.

그들 속에 난 포위된다. 철저하게 포위되고 고립되지만 새로운 것들과의 연결이 이루어진다. 주말 내내 입은 잠긴다. 그리고 귀와 눈은 크게 열린다. 규정된 소통의 방식으로 서로 교류할 수 없지만 원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난 그들 속에서 한 부분이다. 입을 닫았지만 난 끊임없이 그들의 움직임의 공간에 소리에 에워싸이고, 풀과 흙에 이야기를 던지고 노동으로 이해를 전한다. 묵묵하게 발자국을 옮기며 손은 연신 흙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들과 조우한다. 그럴수록 제각각의 소리는 화음의 정도를 깊게 하고, 그 소리마저 멈추는 시간이 온다.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른다고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힘들다 멈추진 않는다. 끊임없이 손에는 풀이 함 움큼씩 집혀 있다. 말끔해진 텃밭을 보며 해냈다는 만족도 잠시, 손가락으로 잡을 수도 없을 만큼 잔챙이가 된 녀석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녀석들은 모이고, 뿌리를 내린다. 공간을 공유한다. 공간을 운영한다는 말이나 가치 지향적 노동은 해당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공간에 잠시 들렀다. 내 소유의 공간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그들에게 적용되는 사항이 아니다. 그들이 있어 살아 있다면 공간은 만들어지고 시간과 함께 공유된다. 어느새 따갑게 내리쬐던 햇살은 녹색의 잎사귀에 앉아 은색의 빛이 되었다. 공기는 한 층 가벼워졌고 공간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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