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잃은 균형발전정책
균형 잃은 균형발전정책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9.06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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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영동군이 목하 고민 중이다. 충북도가 영동에 설치하겠다는 도 농업기술원 분원 때문이다. 이시종 지사가 지난 선거 때 영동에 제시한 공약이다. 쌍수를 들어 환영해도 모자랄 분원 유치가 졸지에 고민거리가 된 이유는 부지를 영동에서 제공하라는 충북도의 요구 때문이다. 영동군은 충북도가 요구한 부지 매입에 50억원을 써야 할 판이다. 시험포장끼지 갖추려면 4만㎡(1만2000평)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50억원 투자에 상응할 유치 효과가 나겠느냐는 의문이 영동군을 장고에 들어가게 했다. 지역 농업인단체들도 “직원 몇명 청주서 출퇴근하는 데 그칠 기관 유치에 50억원이나 들일 필요가 있느냐”며 부정적 반응이다. 영동군이 예정에 없던 요구라며 난색을 표했지만, 충북도는 충북자치연수원이 이전할 제천시를 거론하며 고개를 젓는다고 한다.

충북자치연수원 제천 이전도 이 지사의 선거 공약이다. 제천시는 자발적으로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서며 충북도에 공약 이행을 재촉했다. 제천시의 사례를 영동군도 따르라는 것이 충북도의 입장인 셈인데, 이에 대한 영동군의 입장도 간단하다. 자치연수원이 온다면 빚을 내서라도 땅을 대겠다는 것이다. 자치연수원은 공무원과 도민 등 연간 1만명 이상이 찾아와 장단기 교육을 받는다. 교육생의 저녁 외출도 허용돼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크다. 충북도가 연수원 건립에 들일 예산도 500억원에 육박한다. 타당성 조사에서 제천이 누릴 경제효과가 1616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결과도 나왔다. 제천시가 부지까지 제공하며 유치에 올인한 이유는 이토록 자명하다. 포장에서 일할 일용직까지 포함해 근무자가 20명에 불과할 농업기술원 분원을 자치연수원과 동렬에 두고 영동군도 땅을 대라니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치연수원 이전은 강력한 반대에 봉착해 있다. 우선 이용 주체인 도내 공무원 과반이 반대한다. 연수원을 북부로 옮기면 이용자 다수의 불편과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다. 청주의 멀쩡한 시설을 두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전을 추진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받는다. 도의회에서 제천과 영동의 도의원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정책은 효율과 합리를 추구한다. 하지만 그에 역행하는 정책을 펴야 할때도 있다. 효율과 합리 이상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때가 그 때다. 수도권 공공기관·공기업의 지방 분산정책이 사례다. 지방으로 거처를 옮겨야 하는 종사자들의 불이익, 유관 행정기관과의 접근성이 떨어짐으로써 발생할 업무 비능률, 새로운 청사 건립에 들어갈 과도한 예산 등의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추진한 이 정책의 목표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이었다. 효율과 합리를 포기했지만 더 절실한 과제를 추구한 정책이기에 공감대를 얻었다.

충북도도 청주와 비청주권의 균형발전 논리로 자치연수원 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충북도가 말하는 균형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도내 지자체 재정 자립도 순위에서 꼴찌를 다투는 곳이 남부 지자체들이다. 충북도의 균형발전 정책이 먼저 찾아야 할 곳이란 얘기다. 그러나 남부 지자체들이 우선 순위에서 정책적 배려를 받은 흔적은 찾기 어렵다. 충북도가 지금 처럼 논란과 반대를 무릎쓰고 남부를 챙겨준 적은 더더욱 없었다. 충북도가 남부에 이전하거나 설치한 기관들이 있지만 유치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기관은 드물다. 충북도 산하기관을 함께 유치했지만 제천에선 잔치거리이고, 영동에선 고민거리가 된 작금의 현실은 충북도 균형발전 정책의 불균형을 새삼 드러낸다. 자치연수원 이전에 따른 부담이 가장 먼 남부지역 공무원과 주민 몫이 된 점도 남부의 설움을 시사한다. 유권자가 많은 지자체는 떡을 주고 적은 지자체에는 떡고물을 나눠준 정치적 셈법을 균형논리로 포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부정하기 어렵다.

공기업 분산을 위해 정부가 공을 들인 부분은 지방간의 균형이었다. 전국에 10개의 혁신도시를 만들어 이전 공공기관들을 적절히 안배했다. 수도권과 지방 간뿐 아니라 지방 끼리의 균형까지도 반영함으로써 이 정책은 열매를 맺었다. 비청주권의 불균형을 전혀 고려하지않은 충북도의 균형발전론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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