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지방을 포기하자'고 말하라
차라리 `지방을 포기하자'고 말하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8.30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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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온 국민이 가기 싫어하는 곳에 왜 의사들을 보내려고 합니까'. 의대 정원확대를 골자로 한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어느 전공의가 했다는 말이다. 그가 언급한 `온 국민이 기피하는 곳'은 수도권을 제외한 대한민국, 이른바 지방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는 지방 의료기반 확충을 위해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지방 근무를 해야하는 의사를 양성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비판하며 졸가리 없이 지방의 척박한 거주환경을 들먹였다. 아마도 영화 `친구'에 나왔던 유명한 대사, “하와이는 니가 가라”는 말을 정부에 하고싶었던 모양이다. 나름 변방의 행복을 누리며 살고있는 지방민들이 상처받을 말이긴 하지만, 전적으로 부정하기도 어려운 말이다.

같은 맥락의 말을 저명한 어느 의학자가 했다. 그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지방 병의원들이 그다지 신뢰를 받지못해 많은 지방 사람들이 KTX 타고 서울로 올라와 치료를 받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에 의사 늘려봤자 환자들은 서울로 다닐 테니 정부 시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큰 도시에만 정차하는 KTX를 한번도 타보지 못한 적지않은 지방민들이 의아해 할 말이지만, 대놓고 부정하기도 어려운 말이다.

`지방의사 부족원인 무엇일까. 공공의대 숫자놀음 하지말고 원인부터 해결하라'. 파업에 참여한 어느 전공의가 들고있는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근본적인 해법을 찾자는 참으로 가상한 주장이었다. 지방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읽혔다.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얼마 전 한 지방 의료원이 의사 1명을 연봉 5억3000만원에 간신히 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의사 평균 연봉은 지난해 기준 1억6104만원이라고 한다. 그 세배 이상으로 줘야 의사를 구할 수있는 지방 의료기관의 고충 앞에서 지방에 근무하는 의사의 처우 개선은 답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지방을 서울처럼 만들라는 허망한 요구로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 의사가 부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대형병원에서 인력이 부족해 간호사들이 의료법을 위반해가며 의사가 해야할 일을 대신하는 사례는 흔하다. 걸리면 처벌은 간호사가 받는다. 서울과 지방 간 의료인력의 양적 격차도 수치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의료수준의 격차도 앞서 `KTX 타고 서울 가는 지방 환자'를 언급한 의학자를 통해 확실하게 입증됐다.

얼마 전 의사들이 파업하는 동안에 부산과 경기도 의정부에서 응급환자가 돌봐줄 의료인력이 없어 병원들을 전전하다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의사 파업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성급한 판단이다. 평소에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의료기반이 구색을 갖춘 대도시 형편이 이러니 농촌을 낀 군소도시 사정은 어떻겠는가. 구급차 불러 대도시 응급실로 향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쳐 목숨을 잃는 사고는 이제 시골에서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이를 외면해 지방의 숙명처럼 만들어버린 국가의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 의료인 확충과 지방·공공의료 강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온국민이 가기 싫은 곳에 왜 의사들을 보내느냐' , `병에 걸리면 환자들이 서울로 가는 곳에 의사 늘려봐야 소용 없다' 따위의 반대 논리는 거꾸로 정책의 당위성만 드러낼 뿐이다. 정부는 정책 추진을 보류하겠다며 `보건의료발전계획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의료계에 바란다. 지방을 포기하자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협의체를 수용하라. 협의체를 주도적으로 운영하며 지금 당신들이 제기하는 문제점들을 차근차근 접목해 완벽한 정책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의 투쟁은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될 공산이 높다.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를 국민과 정부를 굴복시킬 호기로 삼는다는 가혹한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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