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 인간에 대한 예의다
성(性), 인간에 대한 예의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0.08.2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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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충북의 대표 시민단체가 성희롱 문제와 관련해 위기에 처했다. 이 단체가 진행한 워크숍에서 남자 회원들이 주고받은 성적 농담을 듣고 여직원이 불쾌감을 느꼈고, 이후 조직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며 이의제기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문제는 3개월간 내부에서 설왕설래하면서 조직문화의 개선이라는 애초의 문제제기는 사라지고, 내부 조직의 감정 갈등으로 비화한 모양새다. 임원과 직원 간 내부 중재가 실패하면서 20대 여직원들이 느낀 수치심과 남성들의 술자리 농담이란 의식의 격차가 급기야 조직을 벼랑으로 밀어낸 셈이다.

성희롱 발언과 관련해 3개월 동안 내부에서 어떻게 중재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집행위원회의 사과에도 여직원들에겐 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경험은 짧지만, 지역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고 시민단체에 몸을 담은 활동가들에게는 남성들의 가벼운 성적 농담이 적잖이 충격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들 역시 여직원들의 문제제기가 당황이 되었던 듯 싶다. 집행위원회의 사과가 있었지만, 갈등이 길어지면서 일부에선 젊은 친구들에게 나이 든 사람들이 사과해야 할 정도 큰 잘못이냐는 불만도 나왔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와 관련해 중앙 조직위에서는 청주지역 조직의 모든 임·직원의 직무를 정지시켰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후속 대책을 요구하는 등 강경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유불문하고 건강성을 중요시하는 시민단체의 이미지가 상당히 훼손된 건 사실이다.

소위 깨어 있다는 사람들로 구성된 시민단체에서 벌어진 이 사안은 전통적으로 남성중심사회인 한국에서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느냐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성희롱적 발언으로 촉발되었지만,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시작으로 거세게 이어지는 미투 바람이 시민단체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가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관이나 관습, 사고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요즘 남성들이 겪는 언어의 혼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성희롱 발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적 발언들이 난무하다. 시민단체의 이번 사건이 이슈화가 되고 더 질타를 받는 이유는 문제제기를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 조직의 문제로 화살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시민단체는 수평적 구조가 힘이다. 상하관계로 이루어진 공무원이나 기업과는 다르다. 그래서 권위적인 조직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 이는 지역공동체를 추구하는 합리적인 운영방식이기도 하다. 나이, 성별, 직업, 관계를 뛰어넘어 누구나 이의제기를 할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만 지역의 여론도 리드해 나갈 수 있다. 조직의 문제를 대화로 풀지 못했다면 남성중심적으로 운영된 시민단체의 한계는 아닌지 다시 점검해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 부족을 거론하기에 앞서 언어는 인간에 대한 예의다. 남녀를 떠나 자신의 품격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희롱은 타인에게 정신적·신체적으로 성적인 불쾌감과 피해를 주는 행위로 남녀차별로 간주한다.

일부 회원들의 성적 발언을 가지고 여성과 남성의 성(性) 인식으로 가름하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가 지닌 모순적인 성에 대한 인식은 급변하는 사회만큼이나 빠르게 전환되길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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