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이야기
개구리 이야기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20.08.2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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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옛날에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를 열심히 하다가, 배가 고파 도시락을 폈다. 꽁보리밥을 크게 한술 푹 떠서 먹으려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나무꾼을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너 누구냐?”“나 개구리다.”

말하는 개구리라니. 신기한 마음에 나무꾼은 개구리에게 밥 한술 주고, 반찬도 주고, 또 밥 한술 떠주고 반찬을 집어주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도시락이 비었는데도 개구리는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여전히 나무꾼을 바라보았다. 불현듯 무서워진 나무꾼은 모든 걸 내팽개치고 산 아래로 내달았는데, 개구리가 펄쩍펄쩍 뛰어 뒤따라오지 않는가? 어느 마을에 도달하니 초상난 부잣집이 있어 그리로 뛰어들어갔고, 개구리가 고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가까스로 떨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느덧 10여 년이 흐르고, 무섬증이 좀 가라앉자 나무꾼은 개구리가 궁금하여 그 마을을 찾아갔다. 그런데 마을은 온데간데없고, 어느 허름한 오두막에서 머리가 하얀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할머니에게 그동안의 소식을 물으니, 개구리 때문에 마을 전체가 망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갑자기 개구리로 변하여 나무꾼의 목덜미를 꽉 물고 울더란 거다.

“영원할 것도 아니면서 나랑 왜 동무해줬냐?”,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나한테 왜 밥 떠 넣어줬냐”며 울부짖더란 거다.

최명희의 `혼불 8권'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초반부를 읽을 때 나는 개구리에게 밥을 나눠준 착한 나무꾼이 상을 받게 되는 이야기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개구리가 은혜를 갚기는커녕 나무꾼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죽이기까지 하다니, 그 결말이 너무나 의외여서 이 이야기의 뜻을 깊이 가려보려고 애썼다. 선한 사람의 호의에 대한 대가가 이런 것인가? 개구리가 원한을 가지고 그리 슬프게 운 까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청암 부인의 의견은 이러했다.

“사물은 제각각 제 모습이 있고, 할 일이 있고, 제 몫이 있는 것이다. 사람 아닌 것하고 사람 말을 해보려 한 것이 첫째 어리석고, 이 나무꾼이 저 살아갈 궁리요, 방편인 제 나무조차 안 하면서 개구리 동무를 해 준 것이 둘째 어리석고, 저 먹으란 제 밥을 저는 하나도 안 먹고 개구리한테 바닥까지 다 내준 것이 셋째 어리석다. 그것이 산에 가서 드리는 고수레라 해도 지나치고 가여운 미물에 대한 동정심이라 해도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과한 것이니라. 내 것이 실한 연후에 남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밥을 주었으면 그냥 주었지, 싱겁냐, 짜냐, 일일이 간 맞추고 비위 맞추어 물어보고, 그 미물의 뜻을 들어주고, 한 것이 넷째 어리석음이다. 다만, 헤아릴 뿐 묻지는 말아야 한다. 평생토록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섣부르게 베푸는 시늉하는 것은 오히려 무서운 원심의 근원이 되기 쉬운 즉, 이런 어리석음은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된다. 다섯째 어리석음은 제 잘못으로 인하여 남의 집을 망치고, 남을 죽이고, 남의 온 동네까지 쑥밭으로 망친 일이다. 헌데, 이 나무꾼의 제일 큰 어리석음은 무엇인 줄 아느냐? 한 번 벗어난 아가리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그 끈에 매달려 다시금 그 처음 아가리로 대가리를 밀고 들어간 일이니라.”

개구리를 살아가며 만나는 `일'로 비유해 보면 대쪽 같은 청암 부인의 말씀이 기막히게 잘 이해가 된다. 여섯 가지 교훈을 기준으로 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주변까지 망치거나 아직 떨치지 못할 아가리라 할 만한 큰 과오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작고 여린 개구리들을 만난다. 지나치게 매정하게 굴었던 때도 있고, 호의에서 출발하였지만 상처받고 마음을 끓이는 때도 있다. 무엇보다 개구리의 정체를 가리는 안목이 있는가. 내 마음의 눈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 현명한 균형이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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