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느낀 것 쓰고 말하면서 지내고 있다”
“책 읽고 느낀 것 쓰고 말하면서 지내고 있다”
  • 오영근 기자
  • 승인 2020.08.13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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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터뷰/어떻게 지내십니까... 유성종 전 충북교육감
1957년 청주상업고 평교사 시작 … 51년 교육계 몸담아
정치권 잇단 러브콜 거절 … “명문고는 입시학원” 소신
일류대학 입시위주 교육 여전 … 올바른 교육정책 필요

 

지역사회에 `어른이 없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지역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간 주장과 대립은 첨예하나 그 갈등을 봉합하고 포용하는 역할의 부재에서 나오는 말일터다.

올해로 창간 15주년을 맞은 충청타임즈는 지역사회를 이끌었던 원로, 어르신을 만나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혜안과 근황을 듣는 <어떻게 지내십니까?> 특집 인터뷰 코너를 마련했다.

“저 같은 퇴물에게 무슨 말을 듣겠다고…”

올해 88세인 유성종 전 교육감은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아파트 자택에서 늘 그렇듯 꼿꼿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기자를 맞았다. 2008년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총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유 전 교육감은 “지난 12년을 읽고, 쓰고, 말하며 생활해 왔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근황을 소개했다.



◆88세, 일본식 조어로 미수(米壽) 이신데 늘 강건한 모습 그대로십니다. 건강을 유지하시는 비결은.

-실은 집 나이로 90살이다. 옛날에는 병으로 죽는 일이 많다 보니 출생신고를 늦게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2년이나 늦었다. 건강하려고 보약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특별히 노력하는 게 없다. 욕심 없이 사는 것, 잘 먹고 잘 자구 편안함을 유지하는 덕택인듯싶다.



◆공직을 떠나신지 12년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책을 읽고 느낀 것을 쓰고 또 말하며 지냈다. 충주고 교장으로 근무할 당시의 자료를 정리해 학교에 전달했다.(나중에 졸업생들이 `조용한 개혁, 줄기찬 전진'책으로 발간) 동갑인 정진석 추기경의 서임식때 오웅진 신부와 로마교황청을 방문했다가 내 뜻과는 무관하게 세례를 받았다. 교리공부도 안 한 사람이 세례를 받았으니… 그래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구약과 신약성경을 필사했다. 대략 7년간 4번이나 필사했다. 두 번째 필사본은 영문 원본을 필사했다. 이렇게 늘 읽고 쓰고 말하며 지냈고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다.

1957년 청주상업학교 평교사를 시작으로 충청북도 교육감에 올랐고 그 뒤 교육부 장학편수실장, 국립교육평가원장, 주성대 학장, 꽃동네 현도대 총장 등 51년을 교육에 몸담아온 유 전 교육감은 `지역의 진정한 교육자'란 호칭에 자신은 `가짜 교육자'였다며 역설을 폈다.

◆충북교육계에 남기신 족적이 큽니다.

-사실 난 가짜 교육자다. 진정한 교육자란 학생들과 배우고 가르치는 교단 교육자여야 한다. 그 기간이 고작 10년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장학사, 장학관, 교육감, 교육관료 등 행정가였다. 그것도 늘 특례인사였다. 교감자격증이 없는데 장학사로, 교장자격증이 없는데 장학관의 임무와 직책이 맡겨졌다. 교육감도 내 뜻과 무관하게 임명됐던 것이다.



◆최근 이시종 지사의 인재육성을 위한 명문고 제안에 김병우 교육감은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명문고는 행정가의 인재육성안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김병우 교육감의 소신은 다른 것이고. 소위 자사고와 같은 명문고는 입시학원이지 참다운 교육기관은 아니라는 게 내 견해이다.



◆정치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국회의원과 도지사 등 3번에 걸쳐 정치권 콜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정치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정치 하려면 좋든 나쁘든 권모술수를 해야 하는데 나는 권모술수가 싫은 사람이다. 교직, 나에게는 교직이 천직일 뿐이다.



◆교육감 재직 시 실업교육강화 시책을 폈습니다. 지금의 청년취업난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국 사회의 직업인식, 직업관이 너무 잘못돼 있다. 일류대학 입시위주의 교육은 여전하고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 3D직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려 한다. 올바른 직업관을 갖는 교육정책이 아쉽다. 그 잘난 교육철학자, 교육학 박사도 이를 외면하는 게 황당스럽다.



◆교육감님의 가족사가 궁금합니다.

-독자이다 보니 부모님께서 26살에 결혼을 시켜서 1남 3녀를 두었다. 내자는 88살인데 건강해서 고맙다. 아이들이 이제 모두 회갑을 넘겼는데 아들도 그렇고 손자까지 3대가 독자이다. 친손자가 둘이고 외손이 일곱, 증손자가 둘이니 복 받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으나 자식 때문에 세상에 죄짓지 않았고 부모로 자식들 걱정 주지 않았으니 그것에 감사해 한다.



1999년도 청주공예비엔날레 개막식 행사에 유 전 교육감도 초대됐다. 개막식 식후행사로 시립무용단의 공연이 땡볕 아래 진행되던 중 내외빈들은 모두 리셉션장으로 이동해 무대가 텅 비었다. 그 민망한 자리를 말없이 끝까지 지켜보던 유 전 교육감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인터뷰를 섭외하던 기자에게 유 전 교육감이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ysjabc@naver.com이었다. “abc가 무슨의미 입니까?” “abc도 모르는 유성종이라는 뜻이야” 구순의 유 전 교육감은 여전히 자신을 낮추고 있었다.

 

/오영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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