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유일의 천민 효자비 양수척효자비
우리나라 유일의 천민 효자비 양수척효자비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0.08.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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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효백행지본(孝百行之本) 효자덕지본(孝者德之本)'이라는 말이 있다. `효도'는 모든 행동과 도덕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중국의 고전인 `효경(孝經)'에 나오는 말이다. 효(孝)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복종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일이 의무화되면서 `효 사상'이 사회규범으로 굳어졌다. 우리나라 마을 곳곳에 부모에 효도하고 가정과 공동체를 지킨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청주의 방서동에서 동쪽으로 고개를 들면 청주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선도산(높이 547m)이 우뚝 서 있다. 이곳에서 발원한 월운천이 목련공원을 가로질러 무심천으로 흐른다. 동남지구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인 마을 안쪽 길을 따라 월오동 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담쟁이덩굴이 덮힌 시골집 담 아래 `양수척효자비'가 쓸쓸하게 서 있다.

1860년에 세워진 양수척효자비는 앞면에 `孝子楊水尺之碑(효자양수척지비)', 뒷면에 건립 시기 등이 새겨져 있다. 오랜 세월 길가에 방치된 탓에 글자를 판독하기가 어렵고, 주인공인 양수척에 관해 전해지는 이야기도 다양하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한다.

조선 초기 성종 임금 때로 추정된다. 이 마을에 사는 부부가 늦둥이를 낳았다. 얼마나 귀엽든지 서로 상대편을 때리라고 시키고는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다. 부모를 때리는 게 버릇이 된 아이는 커서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도 어머니를 때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양수척과 두 동생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횡포를 저질렀고, 늙은 어머니는 걸핏하면 자식에게 매를 맞으며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 매일 자식들을 걱정하던 노모가 병으로 눕자 삼형제는 그냥 놔둘 수 없다며 고려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학식이 높고 효자로 조정에까지 알려진 경연(慶延)이 이웃 마을인 남일면(효촌)에 살고 있었다. 경연은 아버지가 오랫동안 병석에 눕자 마을 앞 연못의 얼음 속에서 잉어를 잡고, 어머니가 병석에 누웠을 때는 마을 상봉의 눈 덮인 산속에 시루를 엎어놓고 고사를 드려 고사리를 돋아나게 하여 병을 고친 유명한 효자이자 청백리였다.

어느 날 경연의 집으로 심부름을 갔던 양수척이 하룻밤을 묵으며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효자 경연의 행동을 지켜보게 되었다. 경연이 어른보다 먼저 이불에 들어가 눕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효자라면서 다른 게 뭐가 있느냐고 욕을 했다. 그런데 한참 후에 보니 경연이 자기가 누워 있던 이불 속으로 어머니를 모셔 주무시게 한다. 어머니가 편히 주무시게 하려고 온기로 이불 속을 따뜻하게 하는 경연의 효행을 보고 그동안의 잘못된 행동을 뉘우쳤다는 이야기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양수척은 월운천 건너편 청주읍성 쪽에 있던 약방으로 급히 뛰어갔다. 약을 지어 부지런히 집으로 향했지만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물이 넘쳐 월운천을 건널 수 없었다. 약봉지를 손에든 양수척이 건너편의 집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물길이 갈라져 어머니를 살릴 수 있었다. 하늘을 감동시킬 만큼 양수척의 효행이 지극했고, 그때 물이 1척만큼 벌어졌다고 해서 수척(水尺)이라는 이름도 얻었다고도 한다.

`양수척효자비'는 우리나라 유일의 천민 효자비다. 그만큼 양수척의 효행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귀감이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충청북도는 지난 2009년 양수척효자비를 충청북도기념물 제145호로 지정했다. 신도시 공사로 주거 환경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름다운 효도의 전통도 강조되어 부모에 효도하고 가정과 이웃의 공동체가 행복해지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더 많이 회자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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