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전하는 말
노래로 전하는 말
  •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0.08.0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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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됐다. 탤런트, 영화배우, 개그맨, 아나운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트로트 서바이벌 무대에 섰다. 삶의 굴곡을 견디고 다시 한번 꿈을 꾸며 도전하는 무대에 선 그들에게서 간절함이 느껴진다.

지난해 종합편성채널에서 시작한 `미스 트롯'에 이은 `내일은 미스터 트롯'은 결승에서 35%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미스 트롯'은 본방송을 보지 못했지만, 소문으로 재방송을 봤다. 그리고 `내일은 미스터 트롯'은 오매불망 기다리는 임처럼 빠짐없이 본방사수하며 설레었다. 결승전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속에 한 사람을 담아두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투표까지 참여했다.

결승에 오른 일곱 명은 계속해서 특별한 공연을 이어갔다. 관중 없이 신청을 받아서 전화가 연결되면 원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는 방식이다. 수천 번 전화를 걸어 연결되었다며 울먹이는 신청자와 사연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함께 만들어 가는 무대였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로 우울증을 치유할 수 있었다는 사연과 아들을 떠나 보낸 엄마의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울고 웃는 공연을 지켜보면서 무기력한 일상에서 회복할 힘을 얻었다.

어릴 적 엄마는 트로트를 즐겨 부르셨다. 평소에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는 정도였다. 가끔 주변 이웃들과 술 한잔 기울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부르는 노래가 있다. 엄마를 생각하면 목소리가 잠긴 채 슬픔으로 부르던 `어차피 떠난 사람'이 잊히지 않는다.

서른 중반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삼남매와 살아가야 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버겁고 무거웠을까? 내 나이 오십을 넘고 보니 그 시절 엄마가 포기한 여자의 삶이 자꾸만 보인다. 트로트를 부르며 고단함을 풀어내던 엄마의 노랫소리도 끊긴 지 오래다.

지금 생각하니 이십여 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일상이 퇴보했다. 시든 화초를 살릴 정도로 식물을 잘 키우셨는데 그것도 끝이다.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보면서, 그래도 혼자 움직이실 수 있는 현실을 다행으로 여긴다.

가수의 꿈을 꾸는 일반인들의 등용문으로 `전국노래자랑'은 가장 오래된 장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십여년 전부터 다양한 채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경쟁하듯 생겼다. 그중에서 나는 공중파 아침방송에서 하는 `도전, 꿈의 무대'를 즐겨본다. `내일은 미스터 트롯'의 우승자도 그 무대에서 5승을 거둘 때까지 지켜보고 응원한 가수다. 내가 이 무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가 있어서다. 도전을 위해 무대에 선 사람들은 순탄치 않은 삶의 여정에서도 노래를 포기하지 못한 굴곡진 인생이야기로 시작했다. 죽음의 고비를 수차례 넘긴 이와 장애인의 도전, 파란만장한 사연은 드라마보다 더 다이내믹했다. 꿈을 포기하지 못해 다시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목소리에 진정성이 담겼다.

한류열풍에 버금가는 트로트 열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뽕짝'이라며 낮춰 부르고 서민들이 즐기던 가벼운 노래로 여겨졌다. 품격이 낮은 영역에 성악가, 국악인, 뮤지컬 배우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이 참여하면서 각기 다른 색깔을 내고 트로트의 진가를 발휘한다. 어린아이부터 트로트를 부르면서 신세대와 구세대를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지나칠 정도로 방송사마다 `트로트'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위로의 말도 과하면 거북한데, 비슷비슷한 방송이 아쉽다. 한편으로 인기 있는 트로트에 편승해 재기를 꿈꾸는 그들만의 리그는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모습과 노래에서 지난 시절의 그리움이 보이고, 나의 젊은 날 추억이 소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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