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에 드는 생각
복날에 드는 생각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0.07.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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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중복이다. 그렇지않아도 점심에 닭 한 마리 사다 백숙이라도 끓여야 하나 하던 참이었는데, 남편의 삼계탕 먹으러 가자는 소리가 반갑다. 평상시 잘 챙겨 먹고 있으면서도 복날이면 습관처럼 보양식을 찾는다. 무더운 여름을 잘 나기 위해서는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은 관습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복날이면 어른들이 개울가에 모여서 천렵을 했다. 신나게 멱을 감고 돌아왔을 때, 친구네 개가 없어졌다는 걸 알고 같이 들로 산으로 한바탕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는 심증(心證)으로 어른들의 만행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금방 새로 데려온 귀여운 강아지에 마음이 팔려 그 사실을 잊어버렸었다. 어쩌면 그건 어린 마음이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어른들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옛날부터 복날에 보양식으로 개장국을 먹는 음식문화가 있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 가지』에도 개장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복날 음식으로 나와 있다. 오행설로 풀어보면 화극금(火克)이라 하여 개의 성질인 화(火)가 복(伏)의 금(金)을 누르게 되므로 개장국을 먹어 더위를 이겨낸다는 원리이다. 영양학적으로 개고기는 단백질 아미노산 조성이 사람의 근육 조성과 비슷해서 흡수율이 빠른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술 후 회복기 환자들에 특히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개장국은 그 재료가 개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게 보신탕, 영양탕, 사철탕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동물애호가나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늘다 보니 개장국을 혐오식품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88올림픽이 있던 해에는 대외적 이미지를 이유로 들어 집중단속을 했던 적도 있었다. 현재도 우리나라에서는 개고기를 식육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도살이나 유통이 불법적이고 비위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는 `카오야장'이라는 오리 발바닥 요리가 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오리를 가열된 철판에 올려놓고 뜨거워서 뛰어다닐 때 양념을 뿌려 발바닥에 배어들게 하면서 익혀 먹는 음식이다. 또 프랑스의 `푸아그라'는 그 재료인 거위의 간을 좀 더 크고 기름지게 만들기 위해 거위의 목에 튜브를 끼워 강제로 먹이를 밀어 넣는다고 한다. 요즘 동물 학대 논란과 불매운동으로 잘 알려진 `루왁 커피'도 우연히 야생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얻은 커피가 비싸게 팔리니까 좁은 우리에 사향고양이를 가둬두고 커피콩만 강제로 먹게 해 문제가 된 것이다.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라는 책을 쓴 작가도 있다. 이것 말고도 지구 상에는 인간의 탐욕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음식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먹어야 하는 걸까? 과연 개장국은 안 되고 소, 닭, 돼지고기는 먹어도 괜찮은 걸까? 아니면 채식주의가 옳은 답일까? 고민해 볼 문제다. 아직 어린 닭으로 만든 삼계탕도 생각하기 따라서는 충분히 탐욕스러울 수가 있는 것이다. 지난봄에 모진 겨울을 견디고 애써 올라온 두릅나무의 첫 순을 피기도 전에 따서 먹은 건 또 어떤가.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욕심 아닌 음식이 어디 있기나 할는지.

내 생각에는 무엇을 먹는가보다는 어떻게 먹느냐가 기준이어야 할 것 같다. 내 몸에 들어와 피가 되고 살이 되어줄 음식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필요한 만큼만 취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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