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Serious 문화와 문화교육
진지한 Serious 문화와 문화교육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20.07.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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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생명체의 필연적 존재 목적은 생존이다. 살아남는 것 후손을 남기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생명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왜 생존하려는 것일까? 생존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라면 삶은 너무 괴로워진다. 살아남고 후손을 남기면서까지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존재는 유한하다. 심지어 우리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우주조차 한계가 있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지속을 꿈꾸는 것 자체가 허무다.

미시적 양자 세계의 입자들이 양자 도약과 입자 간 관계성을 기초로, 거시적 세계 물질로 탄생한다. 거시 세계의 물질은 생명체를 이루고 일정 시간 존재하다 다시 양자 세계 입자로 돌아간다. 이런 물질세계의 순환은 무한하다.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라 절대적 시간은 사라지고 상대적 시간만 존재한다. 상대적 시간의 여정 속에 뇌가 생겼고 의식과 생각이 탄생한다. 덕분에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상상할 수 있다. 존재 이유는 생명일까? 아니면 생명이 의식하게 된 특정한 시간 속에 다른 목적을 갖는 것일까? 과학이 물질세계의 법칙을 수학적 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왜 그런 것들이 필요한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삶은 다시 철학과 신학의 세계로 옮겨온다.

생명체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존재 이유라고 말한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기쁨이라는 쾌감이라는 감동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만족이라는 의미라는 가치라는 깨달음이라는 경험을 느끼기 위해 존재한다. 행복과 기쁨을 경험하기 위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때 가장 행복할까? 심리학자이자 여가 학자인 칙센트미하이는 이에 대한 대답을 `몰입(flow)'이라 한다. 좋아하는 어떤 것에 온 마음을 다하여 집중할 때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두둥실 떠올라 마치 천국에 머무는 것처럼 행복을 경험한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전에 보여 준 원초적 활동과 같다. 생존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활동에 몰입할 때 우리는 행복해지고 존재는 충만해진다.

핵심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것이다. 문화는 흥미의 핵심이다. 무엇인가를 만들고 부수고 조립하고 섞고 깎고 관찰하고 흥얼대고 낙서하고 칠하고 찍고 창조한다. 이 흥얼거리는 기쁨의 몸짓은 생존을 위한 노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음의 기쁨과 행복의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내적인 삶의 기쁨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다. 기쁨을 창조하고 교환하며 연결하는 행위다. 문화는 산업이 아니다. 문화는 창조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존재의 충만함'이다.

문화에는 세 가지 층위가 있다. 일상적 문화, 프로젝트형 문화, 진지한 문화다. 일상적 여가는 매일 먹는 음식과 같다. 손쉽게 노력하지 않아도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다. 프로젝트형 문화는 제철 음식이라 할 수 있다. 특정한 계절에만 즐겨 먹는 음식처럼 특정한 방식으로 일정 기간 향유 하는 문화다. 일종의 유행이다. 진지한 문화는 평생 좋아하는 음식처럼 오래도록 추구하고 변하지 않는 문화다. 진지한 문화는 노동보다 높은 가치를 갖는다. 진지한 문화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고 행복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모든 사람이 진지한 문화를 찾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진지한 문화는 교육과 활동 참여로 경험되고 길러진다. 시민을 위한 진지한 문화교육이 필요하다. 전문적인 예술가가 참여하는 문화교육으로 시민 모두가 진지한 문화를 찾고 향유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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