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 숯 생산시설, 음성 봉학골 유적
백제시대 숯 생산시설, 음성 봉학골 유적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20.07.1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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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1990년대 이후 고고학 조사에서 얻은 성과 중 하나가 철 생산과 관련된 숯가마[炭窯]의 확인이다. 철광석에서 철을 분리하는 공정인 제철작업은 1500도 이상의 높은 열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일반나무로는 800~900도 정도밖에 열을 올릴 수 없기에 높은 열을 필요로하는 제철의 원료로 숯[木炭]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숯은 제조방법에 따라 흑탄과 백탄으로 나뉜다. 흑탄은 가마에 나무를 채우고 높은 열로 불을 땐 후 불구멍과 연도를 막은 뒤 자연소화를 기다려 숯을 밖으로 꺼낸다. 광택이 있고 탄소함유량이 80% 안팎이며 탈 때 연기와 냄새가 심하다.

이에 비해 백탄은 높은 열로 불을 땐 후 측구를 열고 붉게 탄 숯을 꺼내어 재나 흙으로 덮어 강제소화시킨다. 높은 열을 내어 열 효율이 좋고 냄새가 나지 않으며 완전 연소한다. 고깃집에서 사용하는 숯불구이용 숯을 참숯이라 하는데 이 숯이 백탄이다. 백탄은 열 효율이 높아 고대인들이 제철공정에 주로 사용했다. 백탄을 주로 생산하던 숯가마를 측구식탄요(側口式炭窯)라 하며, 가마형태가 피리모양과 유사하다 하여 피리형가마라고도 한다.

최근 음성 가섭산(709m) 서쪽 산줄기가 이루는 깊은 골짜기 비탈진 언덕에서 백제시대 숯가마 9기와 신라시대 돌방무덤[石室墓] 2기가 조사됐다. 음성 봉학골 지방정원 조성사업을 계기로 조사된 음성 봉학골 유적이다.

이곳의 퇴적은 능선사면에서 강한 에너지에 의해 흙과 돌이 이동되어 쌓인 사면붕적층으로, 크고 작은 모난 깬돌[割石]이 퇴적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른바 돌밭이다. 유적이 자리하기에 매우 불리한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 예비조사 과정에서도 돌층만이 확인되어 실망하던 즈음에 돌밭 가운데, 렌즈상으로 일부 찰흙이 퇴적된 곳에서 숯을 굽던 생산시설이 확인됐다. 측구식탄요이다.

숯가마의 입지환경은 숯을 생산할 나무 얻기가 양호하고, 토질이 찰흙인 약 20도 내외의 완만한 비탈진 능선사면이며 개울을 낀 아늑한 지형이다. 봉학골 숯가마의 입지가 이런 조건에 부합한다. 확인된 숯가마 9기는 모두 측구식탄요로 반지하식이며, 가마 길이는 9.3~12m, 너비는 1.4~1.9m로 전체적으로 세장한 형태다.

숯가마 구조는 열을 가하는 연소부, 나무를 채우는 소성부, 연기가 빠져나가는 연도부, 생나무를 태울 때 나오는 수액을 배출하는 배수구, 아궁이 앞의 전면작업장, 숯을 꺼내어 강제연소시키는 측면작업장으로 구분된다. 봉학골 숯가마에서는 대체로 이러한 구조들이 잘 남아 있으나 겹쳐 축조한 가마는 작업장이 없는 것도 있다. 이는 기능이 소멸된 숯가마를 폐기한 후 새로운 숯가마 축조과정에서 폐기한 작업장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한 곳에서 숯가마의 축조, 폐기과정을 반복하면서 지속적으로 숯을 생산했음이 가마의 중복관계, 퇴적층의 양상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숯을 생산하고자 사용한 나무는 작은 조각으로 남은 숯의 수종(樹種)분석을 통해 알 수 있다. 분석결과 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밤나무, 오리나무, 느티나무 등이 원목으로 사용됐다. 이 나무들은 단단하고 질기며 잘 썩지 않아 생활도구의 재료, 건축재료 및 제철용 숯으로 이용했다. 이 가운데 열 효율성이 가장 좋고 조직이 치밀한 참나무를 선호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토산조에 기록된 철광석 채취장소 83곳 중 충청도 18곳(22.2%), 경상도 17곳(20.9%)에 집중된 양상을 보이며, 현재 발굴조사된 숯가마도 이 두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숯가마가 철 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 봉학골 숯가마 조성시기에 주변 유적에서 철제 무기류가 증가하는 양상은 백제의 팽창에 수반된 전쟁에 필요한 각종 무기류의 생산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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