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한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은
  •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0.07.0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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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사회적거리 두기로 전환한 즈음에 조심스레 모임을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문우 모두에게 여러 권의 책을 선물로 줬다. 페미니즘 관련 책으로 앞으로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눌 책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인지라 책 선물에 한 번 더 행복해했다. 거기에 B 선생님의 수필선집 `빛나지 않는 빛'을 덤으로 받았다.

열 명 남짓의 소모임인지라 올해는 내가 회장 겸 총무로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여성 소모임동아리 사업으로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토론하는 내용으로 지원했는데 선정되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들어 봤지만. 자세한 의미에 대해서는 막연했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관련 자료를 검색하면서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모이면 밥 먹고 차 마시고 헤어질 때면 왠지 모를 허전함이 있었는데 좋은 기회였다.

첫 번째 책으로 택한 책은 `평등은 개뿔'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좀 더 쉽게 접근해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만화형태를 골랐다. 이 책은 결혼 30년 차 부부가 책을 쓰기로 한 후 1년간 대화하고 남성과 여성으로서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평등에 대한 생각의 틀이 날 가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평등의 정신은 기본적으로 가정에서부터 부모가 아이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알게 해야 한다. 그것이 기반이 되어 성장한 아이가 사회에 나가 평등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생활방식의 변화를 겪으면서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성차별적 요소는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내가 자란 환경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학습된 교육은 그것이 차별인지 모른 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가부장적 세대를 살아온 남편도 가끔 `여자가~'하는 말로 심기를 건드릴 때가 있다.

페미니즘의 사전적 의미는 남녀의 성별에 의해서 발생하는 정치적 또는 사회적 차별 문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의라고 한다.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본인이 페미니즘임을 나타내는 말은 페미니스트이다. 만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시어머니나 장모님처럼 여자에게 최고의 적은 여자였다.

용기를 내 미투 운동에 동참한 여성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여성도 간혹 있다. 성적 수치심을 느껴 피해자임에도 평생을 죄인처럼 갇혀 살아야만 했던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죽을 힘을 다해 용기를 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여성은 묻어 둔 채 숨죽여 살아가고 있다.

최근 철인3종경기 국가대표 출신 선수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뉴스를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스물세 살, 둘째 아들과 나이가 같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목숨을 끊어 억울함을 보여 주고 싶을 만큼 절실한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아렸다. 이제는 성차별뿐만 아니라 차별의 논란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기울이고 의식의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로 잘못 인식해 `남성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 또한 페미니즘을 단순히 여성의 권위 신장을 위한 단어로만 여겼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그와는 다르다. 단지 여성의 목소리를 높이자는 소리가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평등이다. 또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아이들 국악 동요인 `모두가 꽃이야'처럼 `모두가 사람'그 자체로 보는 것이다. 하얀 국화꽃에 둘러싸인 스물세 살 청춘, 고운 사람이 슬픈 눈으로 이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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