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그리고 소름 돋는 일
이춘재, 그리고 소름 돋는 일
  • 오영근 기자
  • 승인 2020.07.0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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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오영근 선임기자
오영근 선임기자

 

“욕구불만 상태에서 자신의 주도권 표출을 위해 성폭행과 살인을…”.

34년 미제의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이렇게 사이코패스적 범죄로 마무리됐다.

14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34번의 성폭행 등 악행을 저질렀지만 살인마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이춘재는 부산교도소로 되돌아갔다. 독방에 수용돼 수용자들과 접촉이 차단됐고 작업장 노역도 없다고 한다.

건강도 양호하고 TV 시청 등 일상적인 수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부산교도소는 전했다.

공소시효 15년이라는 구법(舊法)의 한계(限界). 유족들의 응어리진 한과 울분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사건 종결 뒤 일각에서는 유전자 감식 등 과학수사의 성과를 높이 꼽는 분위기다.

30년 지난 피해자 유품의 DNA 분석으로 34년 미제사건을 해결해 냈다는 자부심의 발로로 보인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춘재에 대한 유전자감식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26년 전에도 이춘재에 대해 유전자 감식이 이뤄졌었다.

1994년 1월13일, 그때 이춘재는 청주에 살고 있었다.

잦은 폭행에 아내가 가출하자 이춘재는 복수심에 처제를 집으로 불러 성폭행했다.

우는 처제의 머리를 둔기로 때려 잔인하게 살해했고 사체를 이불에 싸서 인근 철물점 차고에 버렸다.

얼마 뒤 이춘재는 경찰에 검거됐다. 화성연쇄살인의 진범 이춘재가 청주에서 붙잡혔던 것이다.

이춘재는 경찰에서 처제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선 범행 일체를 완강히 부인했다.

이때 이춘재의 유전자감식이 이뤄졌다.

당시만 해도 국내의 유전자감식은 초보수준이었지만 이춘재가 범인임을 입증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같은 해 5월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이춘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때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는 무려 10건의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10명의 여성이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됐지만 경찰은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 청주에서도 화성연쇄살인과 유사한 살인사건이 잇따랐다.

91년 1월 복대동 공사현장 여고생 피살, 같은 해 3월 남주동 27살 가정주부 피살, 92년 4월 강내면 고속도로 공사장 20대 여성 피살, 같은 달 봉명동 30대 술집 여종업원 피살, 6월 복대동 20대 주부피살 등.

2년 새 여성 살인사건이 5건이나 발생했다. 30년이 넘어 밝혀졌지만 이 중 2건은 이춘재의 범행이었다.

처제 살인까지 포함하면 3건이다.

만약 그때 화성사건의 희생자들과 처제 살해범 이춘재의 유전자감식을 비교했더라면 어땠을까?

왜 그때 경찰은 이들 청주사건과 화성사건, 처제 살인사건을 묶어서 연관짓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이춘재는 화성사건 용의자로 3번이나 경찰 조사를 받았었는데도 말이다.

결과론적이어서 더 그렇지만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대목이다.

어쩌면 34년 동안 미제였던 이춘재의 연쇄살인 행각은 훨씬 앞서 그 전모가 드러났을 일이었다.

2003년에서 2004년 사이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화성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화성 연쇄살인의 범인이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은 다른 사건으로 수감됐거나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살인을 멈출 수 없다.”

처제살해로 교도소에 수감되지 않았다면 그의 연쇄살인 행각은 계속됐을 거란 말인가.

정말 소름 돋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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