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과 매몰(2)
발굴과 매몰(2)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0.07.0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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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새로 일군 밭엔 돌이 지천이다. 그렇게 주워내도 비가 온 뒤에 보면 흙에 묻혔던 돌들이 또 모습을 드러낸다. 주워낸 돌들로 밭둑은 무더기로 넘친다. 차곡차곡 쌓아 `밭담을 만들 걸 그랬구나.'생각도 해본다. 늦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밭담 쌓기를 시작했어야 했다. 이제 와서 돌로 밭담을 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굳이 밭담이 아니더라도 컨테이너를 중심으로 빙 돌려 담장을 쌓거나 진입로 양옆으로 가지런히 쌓으면 예쁜 돌담장이 될 수 있겠지만, 이일 또한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밭에 드러나는 돌을 주워내기도 바쁜데 다시 돌무덤을 허물고 그 돌을 옮겨서 돌담을 만든다는 건 내 인내심으론 불가한 일이다.

넘쳐나는 감사패, 공로패며 트로피, 메달 등으로 몇 해 전부터 고민했다. 저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진열장을 꽉 채우고도 넘쳐 책장과 장롱까지 침범한 것들이다. 아무렇게나 버릴 수도 없다. 내 이름이 적혔거나 소속단체명이 새겨져 있다. 내 관등성면은 그렇다 쳐도 주는 이의 이름까지 적혀 있으니 더욱 곤란한 일이다. 받을 때는 기쁨이요 더없이 영광이었던 이것들이 이제 와서는 처치 곤란한 물건들이 되었다.

어저께 음성군에서 지정문화재 관련 심의가 있다는 회의통보를 받았다. `이번엔 어떤 귀중물이 문화재로 지정받게 될 것일까.'고택, 비석, 효녀 효부, 석탑, 불상 등 이런저런 심의할 대상을 상상하다가 돌탑을 떠올렸다. 생각이 깊으면 마음도 통하는 것일까? 머릿속에 쌓여만 가는 밭둑의 돌과 처치 곤란한 기념패들을 생각하다 보니 언 듯 돌탑이 떠올랐다. 아무렇게나 버릴 수 없는 패들을 넣고 돌탑을 쌓는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다 보니 기왕이면 타임캡슐을 구상해 보았다.

이 나이가 되어보니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이 세상에 왔다가, 그동안 갖가지 치적들이 있게 마련인데 돌아가는 차에 거두어 갈 것들, 남기고 갈 것들을 걱정하게 된다.

그동안 활동했던 30여 단체에서 받는 공로패며 감사패, 군수 도지사 국무총리 표창패, 신춘문예당선, 시 시조 수필문학상 당선패 등 100여점. 그리고 내가 출간했던 15종의 창작집과 둘도 없는 절친 문우 권순갑 시인과 가까이 지냈던 지인의 작품집. 손때 묻은 만년필 안경 인장 메모첩. 그리고 애호하던 소주 맥주 담배 라이터 등과 요즘 생활구인 비누 칫솔 샴푸까지 챙겨보니 두어 가마니는 실히 됐다. 이를 비닐 팩에 담아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꼭꼭 봉했다.

언덕 위에 탑을 쌓는다. 몇십 년, 몇백 년, 몇 천 년이 갈지 알 수는 없는 탑. 한 개 두 개 정성스레 돌을 쌓는 손길. 돌아보면 내 생이 또한 그러했구나 싶기도 하다. 돌은 왜 그리도 무거운지. 지게에 몇 개만 얹어도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이 내 인생을 지고 왔던 그 무게만큼이나 묵직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뒤돌아 볼 겨를 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죽으라 전진했던 길. 나의 인생이 그러했으나 후회는 없다.

문화재 발굴단에 의해 묻혔던 작은 어머님 묘를 찾았다. 그리고 복원되었다. 묘를 되찾고 원상복구 되었지만 훼손되었던 묘를 생각하면 사촌은 아직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단다. 왜 아니겠는가.

내가 쌓는 이 탑. 누구에게 어떻게 훼손될지도 모른다. 아니 자연재해로 인해 망가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탑을 발굴하는 이가 또 있을지도 모르는 탑. 나는 지금 천 년 탑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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