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 잘못만나면 낭패
임자(?) 잘못만나면 낭패
  • 오영근 기자
  • 승인 2020.06.25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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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오영근 선임기자
오영근 선임기자

 

가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황당한 경우가 있다.
그 황당함에 양 귀밑이 아려올 만큼 울화가 치미는 때도 있다.
누구도 이해 못할 그 황당한 일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 절망감을 느낄 때다. 
청주시 서원구에 사는 64살 박모씨(농업)가 요즘 그렇다.
박씨는 며칠 전 DB손해보험사로부터 구상금 청구서를 받았다.
2년 전 고속도로에서 냈던 교통사고 피해차량 운전자의 한의원 치료비 1300만원을 물어내라는 통보였다.
2년 전 교통사고는 박씨에게 기억조차 희미해진 아주 경미한 사고였다.
체증이 심한 고속도로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던 끝에 급정거한 앞차를 들이받은 사고였다.
말이 추돌이지 박씨가 보여준 사고 당시 사진의 피해차량 뒷면엔 사고 흔적을 찾기조차 힘들었다.
피해차량에는 30대 오모씨 부부(거주지 경기 용인추정)와 두 살된 딸이 타고 있었다.
차량 종합보험에 들지 않았던 박씨는 책임보험으로 오씨 가족에게 치료비와 수리비로 290만원을 보상했다.
박씨는 그렇게 사고 처리가 끝난 줄 알고 지냈다.
하지만 오씨 가족은 그때부터 최근까지 자신이 가입한 DB보험을 통해 한방치료를 받아왔다.
이들이 2년 동안 받아온 치료일수가 오씨 부부 253일, 딸이 107일이나 된다.
오씨 부부의 진단명은 척추염좌였고 딸은 14급 상해였다.
과연 이 진단으로 2년 가까이 치료를 받은 게 가능할까?
한방 의료계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말도 안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염좌라는 게 손가락 삔 정도의 경상인데 양심상 그토록 오래 치료해줄 한의사는 없다는 설명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들이 치료받은 곳이 경기도 용인의 특정 한의원 한 군데였다는 사실이다.
의료계에서는 환자와 한의사 간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한다.
서로 짰다는 얘기다. 박씨는 DB보험사를 찾아 오씨 가족 치료의 부당성을 항의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모르쇠였다.
정황상 한방치료가 비정상적이긴 하지만 보험사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말뿐이었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오씨의 연락처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박씨는 청와대에 청원도 올렸고 경찰의 도움도 요청했다. 결과는 같았다.
경찰은 수사 자체가 어렵다며 되레 명예훼손 역고소 당할 위험만 있다고 알려줄 뿐이었다.
누가 봐도 납득이 안 되는 황당한 경우지만 해결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박씨의 억울함은 의료기관의 허위·과잉진료를 통제할 수 없는 현행 자동차보험제도의 허점 때문이었다.
건강보험의 경우엔 심사평가원이 병원진료비의 사실관계나 적법성 여부를 확인하는 현지조사제도가 있다.
보험금 누수를 막을 수 있는 장치다. 하지만 자동차보험에는 그런 게 없다.
자동차보험의 한방진료비는 해마다 증가추세다. 지난해에만 7090억원으로 일 년 전보다 28%나 늘었다.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한방진료에는 단순타박상이나 염좌 같은 경증환자들이 주를 이룬다.
과잉진료의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동시에 그만큼 보험금 누수의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된다.
2년 동안 척추염좌 치료를 받아온 오씨는 앞으로도 계속 한방치료를 받겠다는 게 해당 보험사의 전언이다.
혹시 모를 교통사고, 박씨처럼 임자(?) 잘못 만나면 누구든 낭패를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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