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된 그림 이야기
철학이 된 그림 이야기
  •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 승인 2020.06.2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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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세상에서 가장 철학적인 파이프는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그림일 것이고 가장 철학적인 구두는 반 고흐의 `구두'가 아닐까?

고흐의 구두 그림은 파리 시절 초기에 그가 즐겨 그린 소재였다. 그림 속 낡은 가죽 구두 한 켤레가 세계적인 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의 관심 속에서 엄청난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논쟁의 시작은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로부터 시작되었다. 1930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하이데거는 고흐의 이 `구두'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았으며 1935년 `예술작품의 기원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예술작품의 의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고흐의 `구두'를 인용 소개하였다.

이 논문에서 하이데거는 신발의 주인은 농촌 아낙네라 단정했다. 하지만 1968년 미국의 미술사학자인 마이어 샤피로가 구두의 주인이 농촌 아낙이 아닌 고흐 자신이라 주장하며 고흐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 네덜란드 농민들은 무척 가난해서 가죽구두를 신을 형편이 되지 않는다 하였으며 그림 속 구두는 고흐가 파리 시절 신고 다니던 신발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도 뒤늦게 구두 논쟁에 가담했다. 데리다는 전시장에 걸려진 그림 속에 보이는 구두는 이미 농촌 아낙네나 고흐가 신고 있는 것이 아니고, 화가인 고흐의 손을 떠나 전시장에 걸려 있으므로 하이데거나 샤피로의 구두의 주체는 부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은 감상자에 달렸다고 했다. 이렇게 세계적인 석학들이 고흐의 `구두'작품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면서 고흐의 낡은 구두는 더욱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정작 고흐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구두가 농부의 것이든 아니면 어느 공장 노동자의 것이든 또는 화가 자신의 신발이든 간에 작품을 통해서 아름다운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구두 주인의 애환이 깃든 삶의 여정이 아름다웠으면 하는 고흐의 의지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술가는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동시대의 다양한 모습과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을 통해 구현해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진정한 예술가의 의무라 생각한다. 고흐가 `구두'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한 사물의 재현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 행위를 통해 지금과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을 인식하고 사람과 소통하며 시대를 읽고, 시대정신을 담아내면서 여러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 역시 철학자가 되어 자신의 현재 목소리를 담으면서 자신이 구축한 여러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줘야 한다.

필자 역시 최근 `구두'라는 미디어아트작품을 선보였다. 수많은 구두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날아다니는 형태의 작품이다. 감상자는 130여 년 전 고흐의 `구두'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느낄 수도 있고 아니면 완전히 다른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우리 삶의 방식이 바뀌고 문명 전환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의 스토리를 히스토리로 남기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시대를 극복하며 100년 뒤를 생각하는 철학 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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