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 이명순 수필가
  • 승인 2020.06.2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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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수필가
이명순 수필가

 

눈길 머무는 곳마다 꽃들이 지천이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 불청객으로 꽃을 구경할 여유도 없다. 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되기는 했지만 불청객은 여전히 우리네 삶과 원치 않는 동행중이다. 올해 오월은 3년에 한 번씩 오는 윤달이 낀 달이기도 하다. 윤달은 음력을 양력에 맞추기 위해 만들어 넣은 달이라고 한다. 없는 달이라고`공달'또는 `덤달'이라고도 한다. 양력의 1년은 365일이고, 음력의 1년은 354일인데 1년에 11일의 차이가 3년이면 33일이 발생해 윤달을 넣는다.

윤달에는 잡신이 붙지 않는다고 묘지 이장이나 손질, 화장을 했고, 연로하신 부모의 수의를 준비하면 반대로 장수하신다는 말도 있다. 또 손 없는 날과 무관하게 이사나 집수리 등을 하면 좋다고 했다. 반대로 보살펴 주는 조상신도 쉬기에 결혼, 계약, 개업 등 축하받아야 하는 일들은 피하기도 했다.

윤달에 하는 일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산소 이장이나 손질이다. 요즘은 장례문화(葬禮文化)로 화장(火葬)이 많아졌지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분묘(墳墓)를 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도 분묘를 했다. 전에는 화장해서 공원묘지에 모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버지가 분묘를 원하셔서 묏자리도 아버지가 미리 준비하셨다.

아버지 산소는 집에서 20분 정도로 가까운 편이었다. 하지만 이남이녀(二男二女)의 자식들은 어느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각자 사느라고 무심했다. 매년 명절에 가서 제사를 지냈고, 추석 전에는 벌초도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더 자주 찾아뵙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났다. 어느 날 아버지 산소 근처를 지나다 가 보니 파릇했던 잔디는 망가졌고, 산에서 내려온 고라니나 멧돼지로 인해 묘지 둘레도 허물어졌다. 때마침 윤달도 있기에 잔디를 모두 걷어내고 새로 심기로 했다.

유난히 뜨거운 날 이른 아침부터 인부 세 명이 와서 일을 시작했다. 요즘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듯 인부 중 한 명은 외국인이었다. 낯선 외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어설퍼 보인다. 옛말에 `처삼촌 산소 벌초하듯 한다'는 말이 있다. 정성을 들이지 않고 대충 일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자식 입장에서는 내 아버지이기에 잔디를 꼼꼼하게 잘 심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 일하는 그들에게는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 일이다. 허리가 아파 직접 일을 할 수 없는 남동생이지만 답답하니 옆에서 잔디 위의 흙을 털어내고 꼭꼭 밟으며 도왔다.

연일 더운 날씨라 이제는 새로 심은 잔디가 잘 뿌리를 내리고 살아날까 걱정이다. 온다는 비가 안 와서 일주일 후 남동생이 급한 대로 생수 20병을 사다 뿌렸다. 그리고 또 며칠 후에 여동생이 지인을 통해 긴 호수를 산소까지 연결해 많은 물을 시원하게 뿌렸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든든한 산 같았다. 평생을 아버지 기세에 눌려 사신 어머니는 생각 외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신적으로 무너지셨다. 그런 아버지가 가족들 곁을 떠나신지 벌써 십이 년이 지났다. 덥고 힘들었지만 온종일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호방했던 성품과 식성, 혼났던 일들도 오늘은 다 그립다. 옆에서 조용하라는 아버지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아버지 다시 뵙고 싶습니다'라고 조아리며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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