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공부란 무엇인가
  • 양철기 교육심리박사·음성 원남초 교장
  • 승인 2020.06.1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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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박사·음성 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박사·음성 원남초 교장

 

모 언론사에서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 순위를 남녀별, 나이별로 조사한 적이 있었다. 10대에서 50대까지 남녀 모두 1순위는 `공부 좀 할걸'이었다. 60대 남자 1순위는 `돈 좀 모을걸', 여자는 `아이들 교육에 신경 더 쓸걸'이었다. 도대체 공부가 무엇이기에….

`추석이란 무엇인가, 제정신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등으로 장안에 `~란 무엇인가'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칼럼계의 아이돌로 떠오른 김영민교수(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그가 모 신문에 1년 7개월간 `공부란 무엇인가'로 20여 편의 칼럼을 연재하였다. 나이 50이 훌쩍 넘어서니 진짜 공부를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인지 이 칼럼을 읽는 동안 아침에 변비가 해소되듯 정신의 쾌감을 맛보았다. 이 쾌감을 저자의 허가나 특별한 인용 표시 없이 짧은 지면을 통해 공유한다.



#정신 척추의 기립근 같은 공부

“나는 왜 공부하는가,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예술가 페티 스미스의 자문자답이다. 유용성이 지배하는 21세기이지만 유용하지 않을 것 같은 공부를 통해 공부하는 사람의 세계는 확장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는 경험에 합당한 언어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경험은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 경험에 맞는 섬세한 언어로 자신을 포착하지 않는 한, 그 경험은 사라지고 그만큼 자신의 삶도 망실된다. 섬세한 언어를 매개로 자신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훈련할 때 비로소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 있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싶다면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만남에는 섬세한 언어가 필수적이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철학자 비트겐쉬타인은 고백했다. 언어는 당장 유용성이 없을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공부에서 얻어진다. 당장 쓸모없는 공부가 `정신 척추의 기립근'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모순된 현실에서 모순 없는 글을 쓰게 하는 공부

세상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은 모순이나 긴장이나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완벽하게 흠결이 없는 혁명가, 오직 순박함으로만 이루어진 농민, 헌신과 청렴으로 무장된 시민사회운동가, 오직 탐욕으로만 이루어진 자본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은, 도덕적이고 싶었지만 결국에 권력을 탐하는 혁명가, 섣불리 귀농했다가 야반도주하는 어설픈 농부, 세상 괴물을 처단하려 괴물의 심연을 바라보다 괴물이 되어버리는 시민사회운동가, 너무 게을러서 탐욕스러워지는 데 실패하는 자본가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진보나 보수로 단정해 버렸을 때 보이지 않던 시대의 문제가 진보적인 동시에 보수적인 인물임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누군가를 독립운동가 혹은 친일파로 단정해 버렸을 때는 보이지 않던 시대의 문제가, 독립운동과 친일을 동시에 하던 모순적 인물임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드러나기도 한다(김영빈 교수는 영화 `밀정'에서 독립운동과 친일을 동시에 하던 모순적인 인물을 예로 든다).

공부하는 사람의 할 일은 이 모순된 현실을 모순이 없는 것처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모순을 직시하면서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공부라고 김영민 교수는 파우스트적인 문장으로 풀어냈다. 모순적인 삶에 대해 모순 없는 또는 모순이 최소화된 문장으로 서술할 수 있는 사람이 공부한 사람이다.

사족을 단다면, 그런 글을 쓸 수 있고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공부하는 사람이다. 공부가 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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