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알맹이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0.06.0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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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내 안의 알맹이들이 모였다. 오물오물 입안을 가득 채우고 먹는 모습은 볼 때마다 배가 부른 느낌이다. 가까이 살기도 하지만 한 주에 두어 번씩은 아들네 가족들이 찾아와 이렇게 즐거움을 선사하니 참 좋다. 지난 세월이 아주 잠깐이었던 것 같은데 알맹이들이 생겨나 생의 확장을 실감시켜 주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으로 가고 있는지 돌아본다.

모든 열매는 껍질을 보유한다. 껍질은 알맹이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치러야 할 과정들이 즐비하다. 문득 걸어온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도 알맹이로 시작된 인생인 것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 깊은 진가를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보낸 세월 속에서 후회와 미련이 남아 마음을 흔들어 댄다. 부모님이란 또 다른 이름, 껍질 속에서 살아왔던 시간이 바로 알맹이의 몫이었다는 것을 이제 와서 아쉬워한들 무엇 하랴.

어느새 내가 껍질의 모양이 되었다. 그 속에 스며 있는 지난 인생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몇 번씩 변해버린 산천이 나에게 어른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지만, 여전히 덜 자란 모습일 뿐이다. 눈감고 기웃대지만 부끄러운 구석들이 많다. 그 속에서 어렴풋한 기억들의 창고가 문을 열어 준다. 좋았던 기억, 아팠던 기억들이 저만큼에서 말을 걸어오듯 하늘로 고개를 향하게 하고 있다. 내 시선은 다시 알맹이들을 향해 함박꽃 같은 미소를 피우고야 만다.

내 안에 품었던 알맹이들도 어엿한 독립체의 형상이 되었다. 그래도 그 끈끈한 혈육의 정은 밀도 있게 이어져 오늘을 사는 보람에 젖도록 한다. 고마울 뿐이다. 한편, 이런 생각이 든다. 생명이 태어나 자라고 한 세상 유영하듯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떠나야 한다는 것을 저 알맹이를 보며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다. 왜 그때는 오늘의 삶을 그려보지 못했을까.

만월에 이르듯 풍요가 가득한 시간이다. 내 안의 알맹이들이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모든 그림에서 입 꼬리를 내리지 못한다. 가득한 물질을 가져서가 아니다.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기쁨은 무엇과 비길 데 없다. 품었던 알맹이들이 점점 커져서 내 삶의 부피를 넘을 날이 곧 다가오리라. 그 시간에 이르더라도 껍질의 역할을 순조롭게 감당하며 살고 싶다.

생의 남은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야 할 때다. 아직껏 내가 껍질의 몫이라 해도 여전히 여물어 가야 하는 입장에 서 있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미숙한 생각과 행동이 앞설 때가 많은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 완전할 수는 없지만 노력하며 살아가리라. 지금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던 문명의 이기가 가져온 현실 속에 있다. 작으나마 필요한 것은 초자연을 바라보는 일이다.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무수하지 않던가.

세상의 모든 알맹이들, 익어가기까지 그 과정을 지켜낸 껍질들, 모두가 한 곳에서 어우러져 값진 모습이다. 때로는 초연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제자리를 지켜간다. 하지만,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과학이 앞서고 문화가 발달했다지만 필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어져가는 질서가 아닐까 싶다. 껍데기일지라도 끊임없이 성숙해져야 하는 나를 발견한 오늘이다. 배시시 웃는 손녀의 얼굴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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