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체할 경제동력 찾을 때
대학 대체할 경제동력 찾을 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6.0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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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영동군과 지역에 본교를 둔 유원대학교가 갈등하고 있다. 유원대가 영동 본교 입학정원 140명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다. 유원대는 대신 충남 아산캠퍼스 정원을 140명 늘리기로 했다. 영동군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영동의 정원을 아산으로 가져가는 `정원 빼가기'라며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영동군과 유원대는 지난 2016년 대학 개명을 놓고 충돌할 당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유원대는 아산캠퍼스 정원 이전을 자제하고 영동본교 재학생을 2500명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영동군은 대학에 필요한 행·재정적 지원에 최선을 다한다'. 영동군은 대학이 이 협약을 일방적으로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통학버스 운행비와 기숙사 건립비, 장학금 등으로 47억여원을 대학에 지원했지만 영동본교 입학정원은 2016년부터 올해까지 290명 줄고 아산캠퍼스는 85명 증가했다는 것이 군의 주장이다.

유원대는 영동군이 지원에 상응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누렸다는 입장이다. 영동대 재학생들이 대학촌을 먹여살리고 영동읍 상권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반박이다. 본교 정원감축은 대학이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구조조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갈등은 대학 하나 유지할 수 없는 지방 소도시의 척박한 환경과 근근히 연명하는 그 대학에 지역 상권을 의지해야 하는 지방 소도시 지자체의 절박한 처지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존폐 위기에 놓인 것은 유원대 뿐만이 아니다. 영동군 역시 언젠가는 지도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예고된 운명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이 시대적 약자들끼리 벌이는 고단한 싸움은 경제·사회·정치·문화적 기반과 거기서 생산되는 과실이 수도권에 집중된 절대 불균형 시대를 압축하고 있다.

지난해 수도권 인구가 마침내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가임여성 출산률이 0점대로 떨어져 나라가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의 와중에도 말이다. 정권, 정부, 정치가 지역간 절대 불균형을 꾸준히 방치해온 성과라면 성과다. 그래서 영동군과 유원대의 갈등은 상징적 장면으로 보인다. 지방이 겪는 차별과 소외를 지방 스스로 숙명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정부가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그런 장면 말이다. 대학 정원감축을 놓고 서로에 대한 공방만 오고갈 뿐 지역에 대학 하나 존립할 수 없는 메마른 환경이 만들어진 데 대한 분노는 전혀 표출되지 않는다.

어쨋든 영동군은 지금 기로에 서있다. 유원대가 본교 정원감축을 완화하는 대신 재정 지원을 늘려달라는 협상카드를 내놨기 때문이다.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는 유원대가 아산캠퍼스를 추진한 2009년부터 예견돼 왔었다. 대학 운영여건이 더 좋은 아산에 제 2캠퍼스가 들어서면 영동의 본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2016년 대학 개명을 놓고 벌어진 2차 충돌은 영동군이 대안을 찾아야 할 때가 왔음을 경고하는 비상벨에 다름없었다.

영동군은 언제까지 대학에 목을 매야 하느냐는 뼈아픈 자문에 다시 맞서야 할 시간이 됐다. 유원대가 지역과 상의없이 본교 정원을 140명씩이나 아산으로 돌리기로 했다면 더 이상 영동본교를 배려할 수 없는 절박한 처지가 됐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대학의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을 지자체 혈세로 지연시키는 것이 상생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 비용은 갈수록 늘어날 터이다. 언제까지 인공호흡장치 비용을 대가며 영동본교의 수명을 연장해 갈 것인가, 대학촌의 공동화와 상권 위축은 대학에 돈만 대면 영구히 회피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물음에 확답할 수 없다면, 영동군은 유원대에 “갈 길을 가라”고 하는 것이 옳다. 대학에 쏟을 비용과 에너지는 대학을 대체할 수 있는 경제적 동력을 만드는데 쓰는 것이 맞다. 대학의 바짓단을 잡고 늘어지는 구차한 모습이 거듭되는 것도 군민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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