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및 수행의 본질
종교 및 수행의 본질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0.06.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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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우리 마음의 투영이고 투사다. 그때그때 주변 상황에 따른 인연 화합의 결과물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현상계 즉, 이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의 위치와 햇빛의 각도 및 그 사람의 모습 등 제반 요소들의 인연 화합에 의해 매 순간 다른 형상으로 드러나는 그림자와 이 세상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 저수지 주변의 동일한 풍광도 저수지 수면이 출렁이고 있는지, 고요하고 잔잔한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 보이듯,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것들은 다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의 마음과 무관할 수 없다. 불원천리로 천리 길이 멀지 않을 수도 있고, 지척천리로 가까운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 까닭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조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조건 그르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0점 조정이 잘 된 저울처럼, 지공무사한 가운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쉰 냄새 나는 뼈다귀도 개의 눈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보이고, 사람의 눈에는 버려야 할 음식물 쓰레기로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고착화된 자신의 업식(業識)을 벗어나 지공무사한 순수의식을 회복해야만, 정견에 따른 정어 정행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출렁임을 멈추고 잔잔해진 호수의 수면처럼, 들뜨고 흩어지고 어둡고 탁해진 우리 마음이, 가라앉고 모아지고 맑고 밝아져야만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

모든 수행과 마음공부의 궁극은 바로 우리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모으고 맑히고 밝힘으로써, 자신이 하고 싶고 잘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일치되는,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종교 철학 및 모든 학문의 본 목적도 행복한 삶이다. 돈과 출세 등은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주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돈과 권력과 명예 등 모든 것들이 가치 있고 유의미한 까닭도, 그것들이 행복한 삶의 중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몸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며, 마음은 갈등 없이 편안한 상태 즉,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선 먼저 지혜로워야 하고, 지혜롭기 위해선 마음이 적적성성(寂寂惺惺) 해야 한다.

적적성성 하다는 것은 마음이 언제나 고요하면서도 또렷하게 깨어 있는 것으로, 적적성성 해야만 나갈 때 나가고 물러날 때 물러나며, 멈출 때 멈출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나갈 때 나가고, 멈출 때 멈추며,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아는 것이야말로, 음양화평의 지혜롭고 건강하며 행복한 삶의 선결조건이다. 저울을 0점 조정하듯, 얼룩진 거울을 깨끗이 닦듯, 마음을 0점 조정함으로써 나 없음의 무아(無我) 내지 공(空) 즉, 인간이 본마음인 순수 의식을 깨달아 증득하는 것이 동서고금의 모든 수행법의 핵심이다. 이 중에서도 매 순간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스스로를 부인하며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는 지관(止觀) 수행법은 특히 강력하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불안정하게 뒤흔드는 불필요한 습관적 행동들을 멈추는 계행(戒行)이 지(止)고, 매 순간 업식이 습관적으로 일으키는 생각과 그 생각의 연장선인 말과 행동들을 즉시즉시 알아차림으로써 마음을 챙기는 것이 관(觀)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라고도 불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서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휴지를 홱~ 잡아당기고 있는가? 온전히 깨어서 필요한 만큼의 휴지를 고요하고 편안하게 잡아당기고 있는가? 앞사람과 대화하면서, 습관에 젖은 채,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거나 작지는 않은가? 나는 누구인가? 이 뭣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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