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리아의 하늘
안탈리아의 하늘
  • 박사윤 한국어강사
  • 승인 2020.06.0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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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사윤 한국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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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잔뜩 흐리다. 날씨가 흐린 날은 마음도 우울해지는 것 같다. 이런 날씨에는 생각나는 곳이 있다.

지난겨울 터키에 다녀온 적이 있다. 매번 터키여행을 잡아놓으면 꼭 일이 생겼다. 이란과 전쟁, 테러 등 각종 사고로 여행 위험국으로 지목되어 3번이나 취소했었는데 드디어 다녀왔다.

늘 그랬듯이 여행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되었다. 가는 곳마다 히잡을 쓴 여인의 그윽한 눈빛과 미소에 반해 버렸다. 그리고 터키에서만 볼 수 있는 새파란 하늘이 반겨 주었다.

이스탄불에서 수도 앙카라를 거쳐 안탈리아로 향했다. 안탈리아에 대한 전설은 그리스 로마신화 이야기로 전해진다.

제우스는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의 아름다움에 반한다. 제우스는 사랑을 속삭이지만 이오는 그에게서 도망간다.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제우스는 도망가는 이오에게 어둠의 장막을 내린다.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이오는 도망치다가 제우스에게 잡힌다.

완강하게 거부하는 이오를 달래기 위해 제우스는 구름으로 변한다. 구름으로 변한 제우스는 이오와 사랑을 속삭인다. 한편 한낮의 먹구름을 수상하게 여긴 헤라는 급히 내려온다. 헤라의 등장으로 놀란 제우스는 이오를 흰 암소로 둔갑시키지만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헤라는 100개의 눈을 가진 거인 아르고스에게 감시하도록 명한다.

이오를 위해서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아르고스를 죽이도록 했다. 헤라는 심복인 아르고스를 죽인 헤르메스에게 분노한다. 이오는 헤라를 피해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제우스는 헤라에게 용서를 구하고 헤라는 그녀를 다시 사람으로 바꿔 놓았다는 이야기이다. 제우스가 구름으로 변신했다는 구름이 곧 안탈리아의 하늘이다.

그 때문인지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안탈리아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제우스는 지금도 어디선가 헤라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안탈리아의 넓게 펼쳐진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갑판에서 보이는 터키석 빛깔의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안탈리아의 회색빛 하늘, 에메랄드빛 물결 사이로 잔잔한 터키음악이 흐른다.

지중해를 에워싼 지평선을 바라본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다가 물들어 버린 서쪽 하늘을 보니 내 마음도 붉게 물들어 갔다. 그림 같은 풍경이 추억의 한 페이지로 저장되었다. 이 아름다움을 눈으로 담아도 다 담지 못해서 카메라에 담았다. 마음 한 편에 저장했다가 시간이 흐른 뒤 꺼내 보고 싶을 때 마음속 열쇠로 살짝 열어보련다.

생각만으로도 설렘이 요동쳐서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잊고 버리고 내려놓고 털어내고/ 모든 걸 비울 수 있는 시간//다시 또다시/ 힘을 내고 버틸 수 있는//

바닥난 배터리를/ 가득 채워 줄 충전기//돌고 또 돌고/ 한참을 돌다가/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곳이 있기에,/ 여행은 즐거운 고통//

그렇다. 여행은 순간을 담는다.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친다. 인생도 여행과 같다. 지난 시간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행복했던 기억으로 살아갈 힘을 찾는다.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듯 인생도 충전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시 힘을 내어 달릴 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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