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쿵저러쿵, 뒷이야기
이러쿵저러쿵, 뒷이야기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2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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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권모술수로 동정심을 자극하는 자를 경계하라. 우리가 恨과 情의 민족이라는 걸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찡해서 우리는 눈시울이 붉힌다. 그냥 듣고 있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무엇이든 도와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든다. 우리 민족에게 잠재된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측은지심과 애哀를 아주 영악하게 활용한다. 마음을 사기 위해서 상대의 동정심을 사정없이 건드린다. 선善을 자극하는 측은지심은 착한 사람에게는 때로는 상처받을 수 있는 아킬레스건이 된다.

요즘 위안부 할머니들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활동한 사람의 이야기가 세간에 뜨겁다. 이 사건에 대해 진실은 곧 밝혀지겠지만, 미디어를 달구는 사실이 진실이라면 위안부 할머니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우리 역사 한 페이지의 산증인인 할머니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차원에서 쌈짓돈을 서슴없이 낸 사람들도 있다. 한 맺힌 할머니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은 착한 마음을 이용한 것이다. 참으로 파렴치한 한 행위이다. 기부금의 의미와 목적에 금이 가게 한다. 기부금에 대해 순수성이 상실된 이상 누가 기부하겠는가? 미꾸라지 한 마리가 도랑을 흐린다고 지금껏 몸바쳐 봉사해 온 사람들의 은혜마저 잊게 한다. 관계자가 정치에만 나오지 않았어도 영원히 이 사실의 전모를 모른 채 그들을 응원할 것이다. 뒤늦게라도 발각되었으니 다행이다.

눈물이 많고 아직 철들지 않은 나는 사석에서 언변이 빈약할 뿐만 아니라, 생각도 한 박자 늦어 돌아오는 길이면 왠지 모르게 서운할 때가 잦다. 진작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고 상대의 말에 질질 끌려다니거나 뚱딴지같이 있다가 오기가 일쑤다. 다음날 억울한 마음을 분명히 밝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도 하룻밤 자고 나면 `뭐 굳이 밝혀서 좋을 게 뭐 있겠나?'싶어 그냥 묻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다부지게 대들어야 할 때, 참는 것을 보면 엄마의 무른 성정을 닮았다. 어려움도 슬픔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엄마의 유전자가 암암리에 작용하는 것 같다. 누가 조금만 슬픈 이야기를 하면 이유 불문하고 상대에게 쉽게 동요되어 마치 본인의 일처럼 아파한다. 내 비싼 눈물을 아주 헐값으로 매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정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자극해 본인의 목적을 달성하는 이를 종종 본다. 어느 날 지인 한 명이 보자고 해 나갔다. 눈물을 흘리며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며 본인은 우리가 하는 일에서 좀 제외해 달란다. 사정을 들은 나는 그의 말을 따랐고 속으로 얼마의 돈이라도 몰래 전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며칠 후에 그는 00에 땅도 있고, 아파트도 나보다 더 넓은 평수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사별한 어떤 이는 혼자서 아이들 키우느라고 힘들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하소연한다. 지금 그는 주위 사람들 덕분에 직장도 다니고 별 불편 없이 잘살고 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남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 요즘은 실력이나 양심보다 언술이나 권모술수가 우위라는 착각을 한다. 이성과 감성을 제어하는 사단칠정 중 측은지심 하나로 理와 氣를 작동시키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기술자이다. 서양인은 한국인을 무표정, 무반응하다고 인식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을 웃게 하기란 참 힘들다. 반면 우리는 슬픈 이야기는 쉽게 동요한다. 이황은 사단은 理인 이성, 칠정은 氣인 감성으로 보고 理가 氣를 제어하지 못하면 이욕利欲에 떨어져 짐승이 된다고 봤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몰라도 측은지심은 다른 사단과는 달리 현시대 동정심을 일으켜 잘 살아가는 기술이자 능력이 되었다. 자립으로 일어나 씩씩하게 살려고 발부림 치는 내가 어울리지 않게 약해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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