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가장자리의 중심
맨 가장자리의 중심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0.05.14 2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요즘 농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일꾼 구하기가 어렵다. 그런 중에 터진 코로나19로 하여금 국가 간 이동이 통제되면서 외국인 출입이 금지되어 농촌일손은 더욱 심각해 졌다. 다행히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이 있어 땅콩 파종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다문화 가정(multi-cultural family)이란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으로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가정이다. 다문화학생은 부모의 한쪽, 혹은 둘 다 외국인인 가정의 학생을 말한다. 중도입국자녀(中途立國子女)란?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다가 부모의 재혼·취업 등으로 부모를 따라 입국 한 국제결혼 재혼가정 자녀와 이주노동자 가정 자녀들이다. 이번에 땅콩 심던 다문화학생 중 한 명(남자-베트남)은 중도입국자녀로 엄마가 재혼으로 인해 입양을 거쳐 한국에 살게 되었다 한다.

한 명(여자-우즈베키스탄)은 외국인 자녀인데 고려인 3세대로 증조할아버지께서는 1920년 일제강점기에 극동지방인 우스리스크로 이주하였단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중앙아시아 치르치크 도시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한다. 지금은 한국에서 F-4를 발급받아 4명의 가족 모두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우리 손녀 지은이와 딸의 이름이 비슷한 다른 한 명 주부는 지연이 엄마다. 일꾼을 주선한 강사로부터 전에 한국어를 배운바 있던 제자다. 베트남에서 농사일을 해 봤던 터라 땅콩 심는 일을 요령 있게 잘해 냈다. 농사를 처음 지어보는 초보인 나보다도 아는 게 많았다. 비닐멀칭작업도 그렇고 씨앗을 넣은 후 덮는 과정에서도 구부려 앉아 호미로 흙을 파 덮지 않고 선호미로 서서 퍼 얹었다. 이렇게 하니 허리도 아프지 않고 능률이 배가되었다.

한 때 우리는 베트남에 장병들을 남의 전쟁에 용병처럼 파견하거나 기술자가 나가 외화를 벌었고 이어 사우디 등 중동에 진출한 근로자가 많았었다. 그들이 벌어들인 땀의 결실이 오늘의 한국으로 부강시켰다. 땅콩을 심으면서 평소 내가 모르고 지내왔던 다문화라거나 외국인노동자의 중요한 위치를 실감하는 계기였다.

오래전 출간한 시집 “맨 가장자리의 중심” 중에 실려 있는 `다리미질'이란 시가 있다.

비 내린 촉촉한 길을 지날 때마다/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면서/구겨진 것들이 면도날처럼 멋을 낸다/신경 줄을 팽팽히 세워 높을 것도 없는 산을/증기기관차가 힘차게 내달리면/울퉁불퉁한 신작로에 평면 연마작업과 같이/연삭기가 지나가고 아스팔트 압착기가 압박을 가한 듯 매끈한 길로 다시 태어난다/반듯해라 반듯해라/피죽바람 일구며 숨 가삐 치닫지 말고/천천히 숨죽여 낮게 낮게 섭리의 길을 가라/입김 호호불어 시린 손 녹이면서/나비처럼 사뿐히 날아오른 길마다 따스한 온기가 솟는다/때때로 중심은 맨 가장자리에 있다/어깨피고 의젓이 걷는 그날이 오면/놀래라/모서리는 어느새 중심에 서 있다//

다리미질을 하다 보면 구겨진 곳을 반드름하게 펴기도 하지만 줄을 세운다. 다릴 때는 세운 줄이 맨 가장자리에 있으나 바지를 입으면 세운 줄이 가운데 있다. 줄이 잘 선 바지는 참 멋스럽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외국인들을 마치 이방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우리가 꺼리는 일들을 마다않고 해 준다. 이들이 없으면 힘들어 꺼리는 일들을 누가 할까?

땅콩을 수확하는 일은 엄청 힘들다고 한다. 수확하는 기계가 있다고는 하는데 엄두도 못 내게 고가이다. 앞으로 뽑고 터는 일도 외국인을 쓰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 지금 농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꾼의 중심에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