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보내며
봄을 보내며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5.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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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무한정으로 흐르는 것이 세월이다. 봄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일정 기간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세상 만물과 만사의 정해진 이치이다. 다만 봄은 아름답고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을 더 실감할 뿐이다. 고래로 잠시 있다가 사라진 봄을 아쉬워하는 글을 남긴 시인 묵객들이 무지기수인데, 당(唐)의 왕유(王維)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봄을 보내며(送春詞)

日日人空老(일일인공로) 날마다 사람은 부질없이 늙어 가건만
年年春更歸(연년춘갱귀) 해마다 봄은 다시 돌아오네
相歡有樽酒(상환유준주) 한 동이 술이 있음을 서로 기뻐할 일이지
不用惜花飛(불용석화비) 꽃 떨어져 날리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라

사람마다 세월 흐르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 제각각이다. 시인은 아마도 봄꽃이 져서 꽃잎이 공중에 날리는 광경에서 시간의 흐름을 절실하게 느꼈던 듯하다.

따지고 보면 꽃이 질 때만 세월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세월은 한순간의 쉼도 없이 흐른다. 따라서 시인 자신도 하루가 다르게 아니 한순간이 다르게 늙어 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에 비해 봄은 어떠한가? 봄은 공중에 날리는 꽃잎과 함께 지금은 떠나가지만 내년에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결코 다시 돌아오는 법이 없다. 여기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생무상에 대한 느낌은 허무함으로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시인은 단호하게 허무함을 떨쳐낸다. 그 방법은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즐기는 것이다. 시인에게 떨어져 날리는 꽃잎은 허무함을 느끼게 하는 슬픈 존재가 아니라, 주흥을 돋우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사람이 하는 일 중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일은 늙는 것이 유일하다. 누구나 늙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늙지 않을 수는 없다. 문제는 늙는 것을 아파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일을 놓고 아파하는 것은 기실 부질없다. 낙화시절에 삶의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만, 이것을 주흥 돋우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받아들이는 역발상이 인생무상의 허무함을 잊게 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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