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일본 잔재'
언론계 `일본 잔재'
  • 노영원 현대HCN충북방송 대표
  • 승인 2020.05.0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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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원이 본 記者동네
노영원 현대HCN충북방송 대표
노영원 현대HCN충북방송 대표

 

#신입 기자가 입사하면 경찰서를 돌면서 취재 훈련을 받게 됩니다. 이런 훈련을 `사쓰마와리'라고도 하고, 줄여서 `마와리'라고 합니다.

`사쓰마와리'는 한자로 `찰회(察回)'로 표기하고 일본어로 읽는 것으로 미뤄 일제 강점기 신문사들부터 내려온 용어로 추정됩니다.

한자의 뜻대로 풀이하면 경찰서를 돈다는 것으로 `사쓰마와리'는 요즘엔 잘 사용하지 않지만 `마와리'는 지금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야마'라는 단어는 한자로 산(山)으로 표기하지만 일본에선 “일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언론사에선 기사를 쓸 때 “야마를 잡고 써야 된다”는 형태로 쓰이면서 그 글의 가장 중요한 `중심'을 잡으라는 뜻입니다.

제가 20대 시절 선배들한테 수없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야마'이지만 방송사에선 점차 사라졌고, 신문과 통신사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문사 편집부에선 제목을 의미하는 `미다시'라는 일본어가 한국말과 섞어 “미다시를 잘 뽑았다”는 식으로 사용됩니다.



#언론계에서 많이 쓰는 일본어 가운데 국적 불명의 단어도 적지 않습니다.

독불장군을 의미하는 `독고다이'는 태평양 전쟁 당시 자폭공격을 감행한 가미가제를 칭하는 특공대(特攻隊)가 발음이 변한 것입니다.

결국 `독고다이'는 특공대라는 의미로 써야 되지만 발음은 물론 뜻도 변질돼 독불장군이라는 의미가 됐습니다.

또 `우라까이'는 뒤집다라는 뜻으로 일본어 우라가에스(うらがえす)라는 발음이 변형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언론계에서 배운 `우라까이'는 보도자료 또는 타 언론사 기사를 베끼라고 할 때 들었던 단어로 그 의미가 왜곡됐습니다.

저도 신문사에서 일하던 시절 일본어 잔재를 많이 사용하면서 무의식 속에서 일본어가 튀어나와 당황스럽습니다.

최근 한 기자에게 “다른 기자들에게 뒤처지지 말고 기사로 반까이(挽回)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만회'라고 해도 되지만 갑자기 `반까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던 것입니다.



#특히 언론계에 남아있는 일본 잔재 중 일본어보다 군기를 잡는 문화와 서열문화가 더 심각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국 `군대 문화'의 뿌리가 일본 군대에서 시작된 것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론사 특유의 서열문화도 일본 잔재인 것입니다.

지금은 공기업 홍보 책임자로 근무하는 A 전 기자는 경찰 출입기자 시절 다른 신문사 선배기자에게 기합을 받은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A 전 기자는 이 사례를 내세우면서 저에게 경찰 기자단의 끈끈한 관계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제 언론계에서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행동들은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일본어를 쓰거나 서열을 강조하는 모습은 남아 있습니다.

저부터 정체불명의 외래어 또는 일본어 사용을 자제하고 서열문화에 의존하는 모습을 탈피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대HCN충북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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