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 꽃이 지네
강가에 꽃이 지네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4.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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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곧 지고 말 것을 기어이 피고야 마는 것이 꽃이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이야 자연의 섭리라서 늘상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꽂의 피고 짐을 통해 세월이 덧없이 빠르게 지난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도 꽃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며 인생무상을 아파하기도 한다.

당(唐)의 시인 원진(元 )도 마찬가지였다.


강가에 꽃이 지네(江花落)

日暮嘉陵江水東(일모가릉강수동) 해 저무는 가릉 강물은 동쪽으로 흐르고
梨花萬片逐東風(이화만편축동풍) 배 꽃잎들 무수히 봄바람에 날리네
江花何處最斷腸(강화하처최단장) 강 꽃은 어디로 날아가 남의 애를 끊을까?
半落江水半在空(반락강수반재공) 반은 강물에 떨어지고 반은 공중에 날리네

가릉(嘉陵)강은 잘 알려진 장강(長江)의 지류로 중경(重慶)에서 장강과 합류한다. 시인은 가릉강이 흐르는 곳에서 봄날 저녁을 맞고 있었다. 강물은 쉬지 않고 동으로 동으로 흐르고 있었는데, 때가 마침 낙화시절인지라, 배꽃이 무더기로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강물이 흐르는 것과 꽃잎이 떨어져 날리는 것 모두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시인은 이 장면들을 보고, 봄날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음을 자각하고 상념에 젖어든다. 강에 핀 꽃은 어디서 사람의 애를 끊는가 하고 시인은 묻지만, 기실 강 꽃에 애를 끊는 것은 시인 자신이다. 꽃으로 수놓은 좋은 봄날을 타향에서 다 보낸 자신의 쓸쓸한 처지에 순간적으로 울컥해졌기 때문이다. 배꽃이 하염없이 떨어져 반은 공중으로 흩어지고 반은 강물 위로 떨어지는 장면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동시에 애상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는 것은 봄이 따뜻하고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절에 그리운 고향에 가거나, 기다리던 사람이 돌아오는 기대를 갖기에 봄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데 봄날도 속절없이 지나가기가 일쑤이다. 한없이 곱기만 할 것 같던 꽃들이 우수수 떨어질 때, 봄날이 오면 일어날 것 같았던 희망 섞인 일들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날아가 버린다. 기다렸던 봄이 야속해 보이는 것은 결국은 외로움 때문이 아니던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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