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공장 터에서 찾은 신탄진 구석기유석
종이공장 터에서 찾은 신탄진 구석기유석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20.04.26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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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청주시 현도면과 대전광역시 신탄진동 사이를 흐르는 금강은 상류와 중류의 경계지점이다. 이곳 금강 주변은 완만한 저구릉성 산지가 발달해 있으며 물줄기는 대체로 곧게 흐른다. 강 언저리에는 옛 하천퇴적에 의한 하안단구(河岸段丘)들이 잘 발달해 있다. 이 하안단구에 구석기인들이 오랜 시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생활하며 구석기문화의 꽃을 피웠다.

특히 대청댐 보조댐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현도면 노산리와 대덕구 신탄진동 언저리의 2㎞ 범위에는 구석기시대 유적 9곳이 분포한다. 공간상 유적의 밀집도가 높고, 유적별로 시기를 달리하며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문화흔적이 1~5개씩 확인되고 있다. 이동생활을 했던 구석기인들이 이곳에 시기를 달리하며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고고학적 증거다. 이는 사냥활동, 석기재료(돌감)의 획득, 식수확보, 주변으로 이동의 편리성 등 구석기인들이 선호하는 좋은 환경 조건을 갖추고 있기에, 이 일대가 약 9만년 전부터 약 2만년 전까지 구석기인들의 주요 거점지역이었음을 말해준다.

이 유적 중 최근 발굴조사된 현생 인류의 삶의 보금자리가 신탄진동 유적이다. 이곳은 1961년 8월 남한제지 신탄진 공장이 설립되어 고급 박엽지(薄葉紙)를 40여 년 동안 생산하던 공장터였다. 종이공장의 상징이었던 굴뚝은 종이 생산력이 상실됨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공장 설립과정에서 본래 지형은 깎이고 지하시설물 설치로 군데군데 깊게 파여 있어 본래의 지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구석기인들이 남긴 문화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땅속에서 오랜 시간 잘 버텨와 우리 앞에 신탄진동 구석기유적으로 다가왔다. 약 5만 5천년 전 구석기인들이 이곳에 처음 삶을 시작한 후 4만 3천년 전과 2만 5천년 전까지 3번에 걸쳐 이동해와 생활하며 남긴 문화흔적들이 확인됐다. 2018년 1월~4월에 금강을 타고 몰아치는 거친 바람을 견뎌내고 구석기인들의 손때 묻은 석기 2천 점을 찾았다.

신탄진동 유적은 3개 문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시간 차이를 두고 3번에 걸쳐 구석기인들이 이동해와 살았음을 의미한다. 이곳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은 석기제작을 위해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석영맥암과 규암 자갈돌을 주로 사용해 돌감 획득을 위한 노동력을 최소화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았다. 이들이 만든 석기는 주먹도끼, 주먹 찌르게, 찍게, 주먹대패, 긁개, 밀개, 뚜르개 등으로 사용 목적이 다른 12종류의 도구를 제작했다. 이 중 구석기시대의 다용도 석기로 오늘날 맥가이버칼과 비교되는 주먹도끼가 많이 제작된 점이 주목된다.

또한, 완전한 석기제작을 위한 예비적 단계인 몸돌, 격지, 조각이 전체 석기의 61%를 차지하는 점과 모루, 망치가 함께 출토된 것은 이곳에서 석기제작활동이 활발하였음을 말해준다. 석기제작과정에서 깨진 석기들이 서로 붙는 부합유물은 50개체 125점이 확인되었다. 몸돌과 몸돌, 몸돌과 격지, 격지와 격지의 부합 등 여러 형태의 부합유물들은 10~36m까지 떨어진 거리도 다양하다. 이는 석기제작 시 작업자와 몸돌의 이동, 작업의 중단과정에서 발생한 결과로 이를 통해 구석기인들의 석기제작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 석기제작과정에서 생산된 부산물(몸돌, 격지, 조각)과 석기제작도구(망치, 모루), 부합유물 등으로 볼 때 이 유적은 석기생산유적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말해준다.

금강 물줄기에 의해 형성된 자연지형 위에 5만 5천년 전 구석기인들이 처음 삶을 꾸린 곳에 1961년 고급 종이를 생산하던 제지공장이 들어섰다가 현재 이곳에는 2,500세대의 대규모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 아파트가 준공되면 수천 수만 명이 삶을 이어갈 것이다. 구석기인들의 주요 생활터전이었던 곳에 삶의 방식과 주거환경이 바뀌었을 뿐 사람들이 살며 또 다른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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