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23 19: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웬 바람.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날이 차고 바람이 세다. 석연치 않게 들려오는 4·15 총선 결과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소리가 모여서 바람이 되었는지, 하여간 며칠 세차게 분다. 세상은 인간만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바람과는 달리 영산홍은 거리마다 꽃불을 켰다. 코로나로 지친 우리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꽃들도 우리 삶만큼 버거운지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린다. 거센 바람에 볼이 시리다.

우리 민족과 밀접한 바람. 태백산 신단수에 신시神市를 세울 때, 환웅이 천부인에게 받아온 풍백·우사·운사 중 제일 센 것이 풍백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삶은 늘 풍전등화를 연출한다. 건국신화 탓은 아니지만, 하여간 한반도는 음으로 양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래도 우리는 잘살아왔고, 잘살고 있다. 자연의 이치를 따라 세상을 다스려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후예가 아닌가. 마른하늘에 청천벽력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일 외에는 그리 쉬이 쓰는 말이 아니다. 영민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아주 잘 적응한다. 춤바람, 치맛바람, 과외바람, 선거바람과 같이 나쁜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우리는 아주 지혜롭게 바람을 잘 대처해나간다. 어려움을 겪는 현 상황을 직시할 때, 앞으로 불어 닥칠 바람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는 우리의 관건이다.

벚꽃 떨군 벚나무가 초록 잎을 달고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린다. 자주 찾는 뒷산도 바람이 불기는 매양 한가지다. 지구촌이 코로나로 몸살을 앓는 동안 미세먼지는 지레 겁먹고 자취를 감췄다. 눈치 빠른 미세먼지 덕분에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어 좋다. 바람이 차서 그런지 인파로 북적거리던 산이 오늘은 한산하다. 바람에 실려 오는 연초록 바람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 중간쯤 걷고 있는데, 낯선 여인이 경직된 표정으로 길을 막는다. 느닷없이 조금 전 119대원들에게 실려 가는 시신을 못 봤느냐고 한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에서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더니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겁이 나서 가던 발길을 돌렸다.

걷고 있지만, 여인의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누가 무슨 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코로나 블루, 생활고, 아니면 개인사 등등 주위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들리니 걱정이다. 특히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의 피해 소식이 적잖다. 심지어 생각지도 못하던 1980년대 있었던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식사비를 내지 않고 몰래 도망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1980년대 초 식당을 운영하던 친정엄마는 허구한 날 사기를 당해 자식들한테 타박을 받았다. 오천 원짜리 밥 한 그릇 먹고 십만 원짜리 도난 수표를 받아 구만 오천을 내줬는가 하면 청년 열댓 명이 고기와 술을 잔뜩 먹고 도망가는 등 하여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툭하면 일어났다.

사회가 어렵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눈앞에 직면한 현실을 우리는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재난대책지원금을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현 상황을 미루어볼 때, 경제 파동이 있을 것 같다. 미리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자. 공짜로 준다고 좋아하지 마라.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면 도둑질이나 진배없다. 우리에게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영민한 유전자가 있지 않은가. 국회에 입성하는 21대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미래가 달린 위급한 시기인 만큼 사심보다는 공심으로 정치를 이끌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화의 바람이 불려나 꽃은 세상을 밝혀도 바람이 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